그는 전지전능한 지성을 갖추었으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신의 탑-
그가 체스에서 최강의 체스 엔진 둘을 상대로 연승을 이어나간 것은 맞지만, 솔직히 기자들은 그가 *릴파제로나 *엘파고를 바둑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체스에는 6개월이 걸렸는데 바둑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답과 동시에 바둑 기력이 상당한 기자들은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비웃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체스가 6개월인데, 바둑이 일주일이면 좀 심한 것 아닙니까?"
"저는 6개월동안 체스의 수만을 분석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실 그 기간동안 바둑의 수를 더 많이 분석했습니다. 바둑과 체스는 비슷해보이지만 상당히 많이 다릅니다. 분명 한 명의 인간으로써 본 바둑에는 굉장히 신묘한 면이 있습니다. 한 편의 바둑을 차분히 바라보고 있으면 잘 그려진 동양화 같다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바둑은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그는 차분히 응수했다.
그러자 한 기자가 그건 질문과 아무 상관이 없다며 물었다. "그러나 알파고가 이세돌을 부수고 커제를 부순 이후 바둑은 그저 계산이라는 게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바둑을 아름답게 보고 모양을 중시하는 일본바둑이 최약체라는 사실을 모릅니까?" 이처럼 몇몇 기자들은 모욕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모욕감에 대한 반발로 마치 그에게 독사같은 날카로운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러분의 여러 질문들 충분히 이해합니다. 바둑으로 인공지능을 이기기가 무척나 어렵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솔직히 이번에 저도 100% 확신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승부를 피하진 않습니다. 일주일 뒤에 경기는 있을 것입니다. 저는 경기로 말할 것입니다."
일주일 뒤에 그의 앞에는 엘파고라는 막강한 바둑 인공지능이 착석했다. 엘파고는 흑, 그리고 그가 백이었다. 덤은 7집 반, 중국식 룰이었었다. 엘파고는 화점이었고 그도 화점이었다. 다시 둘 다 화점을 두어, 포석은 양화점이 되었다. 그가 화점을 두고 48초가 흐른 후 엘프고는 33을 두었다. 그는 최근에 유행하는 33정석으로 엘프고의 두 점을 잡아 실를 챙겼고 반면 엘프고는 세력을 얻었다. 경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엘프고는 굉장히 빠르고 조직적인 포석으로 나머지 세 귀를 차지해나갔다. 그는 덤덤히 자신의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기자들은 이미 포기하는 심정으로 이 대국을 보고있었다. '그럼 그렇지'하는 얼굴이었다. 중앙에 백돌이 많이 안정적으로 있는 것처럼 보여서 초보자가 보기엔 얼핏 비슷하다고 느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똑같은 크기의 땅처럼 보이더라도 돌이 촘촘히 있을수록 삶의 확률은 올라가지만 집수는 현저히 떨어진다. 엘프고는 이미 완벽한 실리를 세 귀를 통해 얻었고, 탄탄한 포석을 구축해놓은 상태였다. 엘프고는 마치 제비처럼 중앙이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비집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결국 흑과 백의 난전이 벌어졌다. 백은 승리의 기회를 그나마 얻기 위해서, 흑은 백의 승리가 아예 불가능하도록 둘의 세력은 박빙으로 맞부딪혔다.
바둑의 중앙은 정말 정말 넓다. 정석의 발명 이후 인간과 인공지능은 귀에 대해서 (어쩌면 더 발전할 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기초적인 지식을 얻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인공지능조차 바둑 중앙을 완벽히 계산하지는 못한다. 중앙 정석은 없다. 수가 엄청나게 다양하고 형태나 대응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백과 흑이 어우러져가던 쯤 그가 호구를 치는 순간 흑 아홉 점이 살 길이 없어졌다. 그러나, 이 역시 엘파고의 계산 속에 있었다. 싸우기 힘든 지역의 아홉 점을 주는 대신 백의 한 쪽 거대한 벽을 흑 아홉 점을 일종의 좀비 방패로 삼아 뚫어냈다. 뚫린 흰색 벽 사이로 흑의 돌들은 미친듯이 쏟아졌왔다. 마치 사람을 물어뜯으려던 좀비처럼 아니 좀비떼처럼 흰색 벽 틈 사이사이로 번져나가 흰색 집들을 탈환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결국 그는 항복을 선언했고 결과는 엘프고의 불계승었다. 아직 끝내기가 완전히 진행된 바둑이 아니었지만 눈으로만 계산해도 반면 35집 이상의 차이였다. 한 마디로 완패였다.
"충격적이긴 하지만, 이번 패배는 제게 승부의 세계는 참으로 냉정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승부는 빠르고 패배는 아픕니다. 저는 이번 패배를 교훈 삼아 3년 뒤에 재도전을 신청하는 바입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다시 인공지능의 바둑 수들을 다시 복기하고 평가해볼까 합니다. 저는 이번 시합에는 사실 처음부터 큰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어마어마한 차이가 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을 남긴 후 3년의 자숙기간을 가졌다. 그 뒤로 기자들은 비웃음을 흘렸다.
*실제로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의 이름은 릴라제로와 엘프고이다. 이 둘의 기력은 매우 높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존 인류 최강인 커제, 박정환 선수와 접바둑을 둘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이것은 하나의 픽션이기 때문에 현실과 어떤 혼동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이런 이름들을 차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