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poet 43

괭이 갈매기의 울음

생긋한 흙냄새 빗 속에서  그대 기억 내게 져며든다 내리우는 슬픔 그대와 함께 피어낸 첫 벚꽃의 흔적은 이제 내게도 전혀 남아있지 않는가  똑같은 풍경 바껴든 공간 나는 그저 저밀듯이 걷는다 풍부한 거리 속 새겨놓은 숲의 새들은 각자의 울음을 모두 다 울고서  그저 서쪽으로 모두 날아갔다 동쪽 바다에 덩그러이 남은 같은 정情을 모두 내비두고서

시poet 2024.07.08

어느 날 나의 심장 멈춘다면 (by 영웅)

어느 날 나의 심장 멈춘다면 나의 심장 그대 심장 같이 맞대어 놓을게요 어느 날 나의 심장 멈춘다면 그대 손 한 손가락이라도 잡고 있을게요 어느 날 나의 심장 멈춘다면 가빠진 호흡, 삶에 대한 미련 따위 모두 버리고 당신을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떠나갈게요 어느 날 나의 심장 멈춘다면 당신과의 모든 추억과 기억을 떠올릴게요 이 세상 어떤 보석과 다이아 그리고 쾌락과 유흥 나는 가치가 없다는 걸 알아요 죽음 앞에서 우리는 평등하죠 심지어 죽음을 죽이려하는 과학의 광신도들에게도 죽음은 형두대의 철퇴를 내려요 다만 당신과의 사랑, 평범하고 전혀 멋드러짐 없는 아름다운 당신과의 평범한 이 사랑이 나를 구원시켜요 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자아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사랑만이 메피의 날개를 묶어버려요 어느 날 나의 심..

시poet 2024.02.12

남자는 등으로 운다

눈물 흘리는 앞모습 차마 보일 수 없어 괜찮다고 괜찮다고 앞에서는 그렇게 당당한 척만 했다 나는 그녀를 조용한 철장에 가두어두고 슬픔에 그녀를 담굴 수 없어 최대한 많은 행복한 웃음으로 우리의 시간을 채우려 노력했다 걸어오는 뒷모습 보여줄 때도 허리는 곧게 펴고 발걸음은 낙낙하게 아무도 볼 수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그제서야 두 손 얼굴에 받쳐 울고 또 운다

시poet 2024.01.14

도시를 거닐며 詩, 조영웅 씀

펼쳐진 책은 오늘도 활자를 토해낸다 방울 방울 흘러가는 자동차 모두 모여 멈추는 바다가 될 때까지 흐름대로 굽이굽이 흘러간다 깔아놓은 자리마다 흥이 무한한 시장돗떼기 음식 사이사이 설움이 녹아들어 발갛게 익어가고 입 속 소주는 돗대를 삣대어 날아가는 갈치 꽁치 ㅁㅂㄹ 그리고 ㄱ 그리고 ㄴ 요리도 굽혀 저리도 굽혀 그러나 직각으로 펼치어 각각의 자리마다 어우러진 대화의 돗떼기 닿으면 펼쳐진다 무수한 거리에 입 맞추어 보려무나 발이 닿는 거리마다 무한히 펼쳐지는 새로운 장들 '도시를 거닐며', 조영웅 씀

시poet 2023.04.20

옥상의 추억

누워서 하늘을 본다 바람 결에 휘날리는 잔딧불소리 만질 수 없는 너의 손은 오늘도 거칠다 ​ 하늘의 별들은 오늘도 바쁘게 달리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동쪽에서 다시 서쪽으로 ​ 은하수 별들은 끊임없이 녹아내리고 인간의 자취는 서서히 사그라져간다 ​ 닿을 수 없는 왼손을 뻗어 별을 이리 문질 저리 문질 은하수를 이리 문질 저리 문질 ​ 멀리서 낮게 흐르는 개울물소리 작게 속삭이는 개구리마다 별빛은 작게 파편화된다 ​ 시간은 영원히 흐르고 너와의 추억은 기억으로 사그라든다 ​ 닿을 수 없는 오른손을 뻗어 전혀 변할 수 없는 은하수에 나의 마음을 색칠한다 ​ 별이 내리는 마음의 끝잔을 마시며 너의 눈동자에 건배 ​ 우리 추억에 건배.

시poet 2021.07.11

빈 강의실

빈 강의실에 그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학기 내내 채워진 수많은 소리들 : 학생들끼리 얘기하는 소리, 글씨 쓰는 소리, 창문 밖 너머의 공소리, 팔꿈치가 부딪치는 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 시간마저 멈춘듯이 모든 것이 고요한 정적이었다. 그 정적 한 가운데 은퇴한 노교수는 아무 말 없이 텅 빈 강의실을 보았다 ​ 더 이상 집을 필요 없는 분필, 더 이상 사용할 필요 없는 칠판,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는 학생들 ​ 지나간 수없이 많은 기억과 추억이 그의 상념 너머로 강처럼 흘렀다 스승의 날에 찾아온 학생들과 함께 먹었던 기쁨 강의 때에 자신의 말에 경청하며 이해하던 또렷한 눈빛 자신에게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든 학생 밤이고 낮이고 끝없이 몰두하여 쓴 연구논문들 이제는 모두 추..

시poet 2021.04.10

비는 지렁이의 부잣집 아빠이다. ​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껍질로 되돌아간다. 각자 껍질로 돌아가서 무언가 하는 것일 게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비가 오면 지렁이들은 밖으로 나온다. 지렁이들은 흙 밖으로, 물 속으로 기꺼이 자신의 더럽고 깨끗한 몸을 씻긴다. 아이 개운하다- ​ 지렁이들은 만물의 주인이 된다. 사람들은 조용히 각자의 껍질에서 울고 있다. 나는 그 눈물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늘이 주는 비인가? 그러나 비가 오면 지렁이들은 기쁨으로 소리지른다. 저 많은 나무들, 저 깊은 흙, 저 드넓은 하늘 비가 오면 모두 지렁이 것이 된다. 비가 펑펑 내리는 날에는, 비는 지렁이를 위하여 이 모든 것들의 전세를 내준다. ​ 그러니 비는 지렁이의 부잣집 아빠이다.

시poet 2021.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