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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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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한 나그네가 산 속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 그 나그네는 조용히 옷을 벗었다.
소나무 달구지 달구지 끄덕 끄덕 오늘도 가련하게 다리를 편다 ​ 무한히 이어져 내려가는 영원의 굴레 죽음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였는가 ​ 소는 다만 눈물이 마르지 않은 두 눈동자로 자신의 주인이었던 시체를 본다 남은 건 흙 한 줌 ​ 그리고 흙 속에 피어나는 생명
옥상의 추억 누워서 하늘을 본다 바람 결에 휘날리는 잔딧불소리 만질 수 없는 너의 손은 오늘도 거칠다 ​ 하늘의 별들은 오늘도 바쁘게 달리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동쪽에서 다시 서쪽으로 ​ 은하수 별들은 끊임없이 녹아내리고 인간의 자취는 서서히 사그라져간다 ​ 닿을 수 없는 왼손을 뻗어 별을 이리 문질 저리 문질 은하수를 이리 문질 저리 문질 ​ 멀리서 낮게 흐르는 개울물소리 작게 속삭이는 개구리마다 별빛은 작게 파편화된다 ​ 시간은 영원히 흐르고 너와의 추억은 기억으로 사그라든다 ​ 닿을 수 없는 오른손을 뻗어 전혀 변할 수 없는 은하수에 나의 마음을 색칠한다 ​ 별이 내리는 마음의 끝잔을 마시며 너의 눈동자에 건배 ​ 우리 추억에 건배.
코골이 우리 아빠의 코는 제우스이다 밤마다 천둥, 번개를 친다
빈 강의실 빈 강의실에 그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학기 내내 채워진 수많은 소리들 : 학생들끼리 얘기하는 소리, 글씨 쓰는 소리, 창문 밖 너머의 공소리, 팔꿈치가 부딪치는 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 시간마저 멈춘듯이 모든 것이 고요한 정적이었다. 그 정적 한 가운데 은퇴한 노교수는 아무 말 없이 텅 빈 강의실을 보았다 ​ 더 이상 집을 필요 없는 분필, 더 이상 사용할 필요 없는 칠판,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는 학생들 ​ 지나간 수없이 많은 기억과 추억이 그의 상념 너머로 강처럼 흘렀다 스승의 날에 찾아온 학생들과 함께 먹었던 기쁨 강의 때에 자신의 말에 경청하며 이해하던 또렷한 눈빛 자신에게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든 학생 밤이고 낮이고 끝없이 몰두하여 쓴 연구논문들 이제는 모두 추..
비는 지렁이의 부잣집 아빠이다. ​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껍질로 되돌아간다. 각자 껍질로 돌아가서 무언가 하는 것일 게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비가 오면 지렁이들은 밖으로 나온다. 지렁이들은 흙 밖으로, 물 속으로 기꺼이 자신의 더럽고 깨끗한 몸을 씻긴다. 아이 개운하다- ​ 지렁이들은 만물의 주인이 된다. 사람들은 조용히 각자의 껍질에서 울고 있다. 나는 그 눈물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늘이 주는 비인가? 그러나 비가 오면 지렁이들은 기쁨으로 소리지른다. 저 많은 나무들, 저 깊은 흙, 저 드넓은 하늘 비가 오면 모두 지렁이 것이 된다. 비가 펑펑 내리는 날에는, 비는 지렁이를 위하여 이 모든 것들의 전세를 내준다. ​ 그러니 비는 지렁이의 부잣집 아빠이다.
술 한 잔 했어요 마시고 그대를 그리워했죠 ​ 계속해서 맴도는 당신 왜 내 곁에 오지 않나요? 끝없이 흘러가는 작은 호수 나의 바람이 잔잔한 물결에 밀려나네요 내 마음은 찢어질 거 같아요 ​ 영원히 못 보는 당신 왜 내 곁에 오지 않나요? 나는 당신을 만날 수 없는 건가요? ​ 이 슬픔의 눈물이 다시금 잔으로 모여 기쁨의 눈물이 될 수 있도록 저는 잔을 두 손으로 받아 입으로 삼켜요 ​ 사랑하는 당신을 볼 수 없기에 손에 담긴 이 작은 호수는 무엇보다 달아요 술이 씁쓸할 수 있도록 제 곁에 와주세요 ​ 수많은 호수에 띄워진 당신의 얼굴 수많은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는 당신은 따뜻한 밤하늘을 비추는 차가운 달빛 ​ 볼 수 없으니 그리운 마음 담아 술 한 잔으로 사르륵 사라지네요
꽃 한 송이 다시 지네요 꽃 한 송이 다시 지네요 저도 이제 알아요 당신을 향한 저의 마음 진심이 아니란 걸 ​ 행복한 돌담에 기대 바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저는 진심으로 감사의 미소를 지어요 ​ 커다란 큐브에 갇혀 영원의 시간으로도 풀 수 없는 걸 풀어야 하는 게 나무가 지는 시간이라해도 ​ 저는 기꺼이 태양을 바라보고 흘러나온 물을 마실게요. 행복하기를 바랄게요 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