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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와 일득록

공자와 자로 사이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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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의 영공이 신하의 아내와 통정을 하고 그녀의 속옷을 입고 조정에 나아가 이를 모두에게 자랑해 보이자, 신하인 설야가 간언을 했다가 죽임을 당했다. 100여년 후 이 사건에 대하여 한 제자가 공자에게 질문하였다.

"설야가 바른 말을 하여 죽임을 당한 것은 옛날 주왕의 숙부로서 그의 폭정을 비판한 비간의 죽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를 인仁이라 칭하여 옳은 것인지요?"

그러자 공자는 대답하였다.

"아니지. 비간과 주왕과의 관계는 혈연이기도 하고, 또 관직으로는 소사의 자리에 있었지.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버리면서까지 간언을 한 것은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주왕이 후회하기를 기다린 것이야. 이는 마땅히 인仁이라고 해야지. 그러나 설야는 혈육도 아니었고, 지위도 낮았으니 인이라고 보기는 힘들겠지. 나라가 어지럽고 군주가 방탕하면 깨끗하게 관직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홀몸으로 일국의 어지러움을 바르게 하려고 하다니 이는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버린 것에 불과하다네."

그 제자는 공자의 말을 듣고 납득하여서 물러났으나 옆에서 듣고 있던 자로는 이해할 수 없어서 공자에게 다시 물었다.

"인이나 불인은 둘째치고 어쨋든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국의 문란함을 바르게 하고자 간언한 것이니 훌륭함이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걸까요? 결과야 어떻든 생명을 헛되이 한 것이라고 딱잘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대는 그러한 소의小義 속에 있는 훌륭함만을 볼 수 있고 그 이상의 것은 보지 못하는가? 옛 사대부는 나라에 질서가 있으면 충성을 다함으로써 도왔으나 나라에 도가 없으면 물러날 줄도 알았다네. 자네는 아직 이러한 출처진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군."

"결국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신의 안전을 꾀하는 것밖에 없는것입니까? 몸을 버려 의를 세울 수도 있지 않나요? 설야가 목전의 어지러운 윤리를 무시하고 지위에서 깨끗하게 물러났다면 그의 일신은 그것으로 좋겠지요. 하지만 진나라의 백성에게 그것이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나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언하여 죽는 쪽이 국민의 기풍에 주는 영향으로 말하면 좋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일신의 보전만이 소중하다고는 말하지 않겠네. 그렇다면 비간의 죽음을 인이라고 칭찬하지도 않지. 단지 도를 위하여 버리는 생명도 그 버릴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라는 뜻일세. 그것을 지혜롭게 헤아리는 데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네. 서둘러 죽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거든."

[대충 <논어>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약간 편의에 맞게 내가 옮겨 적었지만, 논지는 정확히 그대로 가져왔다. (즉, 논지는 흔들지 않는 선에서 약간 변형해서 옮겨적었다.) 원문을 보고싶은 분은 <논어>를 직접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글을 읽고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어느 쪽이 옳은 것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둘 다 옳은가? 둘 다 틀렸는가? 다음의 글은 가능한 하나의 대답이다. (이 대답만이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러한 대답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굉장히 짧은 제시문이지만, 바로 이 글을 통해서 우리는 공자와 자로의 논의가 팽팽히 맞서는 지점을 볼 수 있다. 둘의 차이는 명확한데, 이 제시문에 나온대로만 판단해보자면, 공자는 도덕현실주의라고 말할 수 있고 자로는 도덕이상주의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둘의 이해가 가장 명확하게 대립하는 지점은 출처진퇴에 관한 찬성/반대 여부이다. 자로는 도와 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실질적인 결과가 없더라도 기꺼이 간언하다 죽을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로의 견해는 젊은 혈기에 굉장히 좋은 의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도나 의는 현실과는 관련이 없는 공상이 될 수도 있다. 자로의 혈기에 찬 대답에 공자는 "서둘러 죽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거든"이라고 나지막이 대답한다. 그러면서 지혜를 갖추어 판단해야한다고 응수한다. 공자에게 중요한 건 도나 의를 정치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현실적인) 결과였던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비간의 죽음은 높게 평가했지만 설야의 죽음을 평가절하했던 것이다. 도덕을 현실적인 차원에서 적용하면 백성을 도울 수 있고 인仁을 이룰 수 있다. 자로는 이상에만 치우쳐 이를 간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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