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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거대한 공간 속에 작은 파란 점 (정식 명칭은 '창백한 푸른 점'이다 이는 칼 세이건의 책을 번역했을 때 한국어 제목이기도 하다)
나는 이따금씩 이 광활한 공간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이 사진은 태양 공전면의 32도 위를 지나가고 있는 보이저 1호가 본 지구의 사진이다(지구와의 거리 약 61억 킬로미터). 나의 상상은 단순 태양계를 벗어나 전체 은하계로 향한다. 다시 그 은하계 밖으로, 저 먼 성운들 사이로 나는 우리의 태양보다 더 큰 하나의 항성에 걸터앉아 다시 우리 지구를 가만히 쳐다본다. 내 눈에 들어오는 수 조 개에 이르는 별들 사이에 작은 파란 점 하나. 그것이 바로 지구이다. 가끔씩 이어지는 이러한 메타인지는 내게 말로 다할 수 없는 평화를 주었다. 가끔 느끼는 인생이라는 무게에서 오는 허망한 고통으로부터도 해방시켜 주었다.
만약 당신이 정말 중요한 ppt 발표가 있다고 해보자. 이 발표에는 사장과 회장이 참석하며 아마도 이 발표를 통해 회사에서 당신의 운명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당신은 긴장된다. 이 발표가 너무나 중요해 보인다. 바로 이럴 때 위의 거대한 공간 속에 작은 파란 점을 생각해보는 건 권장할 만 하다. 이렇게 메타인지를 하고 나면 의외로 쓸데 없는 긴장은 사라지고 필요한만큼의 샤프함만 남게 된다.
만약 당신이 정말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보자. 말 그대로 당신은 억까를 당했다. 주의 모든 사람 중에 당신만이 그 억울한 일을 당하였으며 그 상처는 결코 회복될 수도 없다. 바로 이럴 때 거대한 공간 속에 작은 파란 점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건 권장할 만 하다. 이렇게 마음 속에 그림을 그려보면 내가 정말 억울하게 생각했던 거대한 것들이 생각보다 너무나 작다는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 나를 너무나 힘들게 하고 새벽이고 밤이고 나를 괴롭혔던 생각이 너무나 깨알같이 작아보여서 귀여운 동정심마저 든다.
이런 얘기를 하면,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허무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나 같은 사고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더 그렇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명문대학원생들 중에 천문학과 학생들이 자살을 자주 한다는 루머가 있었다. 이들이 관측하는 저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자신들의 삶이 너무 보잘거 없어 보이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사실 예를 들어, 정치학과 학생들이나 국문학과 학생들, 심지어 천문학을 제외한 공대생이나 기본 과학 학생들도 그 정도의 공간과 적막함을 평소에 느끼기는 아주 어렵다. 애초에 무엇을 저 우주의 광대함에 비견할 수 있을까. 이 지구의 삶에 온종일 최선을 다하는 정치, 경제를 하시는 분들은 그런 적막함을 느끼기가 불가능하다. 애초에 모든 인류와 모든 사건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이 이 지구에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진공이 없게 느껴질 정도로..
그렇지만, 정말 의외로 그런 식의 메타인지가 나를 허무함으로 이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런 식의 허무함은 강자의 혹은 모태 꿀빨러의 전유물이 아닌가 성급히 추측해본다. 예를 들어보자, 톨스토이는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이 너무 좋을 때,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하게 행복할 때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다. 고백록에 남긴 그의 순수한 고백들을 축 읽어보자면, 가장 행복할 모든 조건을 가진 상태로 총을 들고 자살을 생각하는 그의 절절한 마음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그가 모태 꿀빨러 귀족이라는 걸 뜻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 더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의 인류는 톨스토이 정도의 꿀빨 인생을 도무지 경험할 수가 없다. 모든 게 너무 넘쳐나고 돈이 너무 많고 귀족이고 예쁜 아내와 자식이 있고 먹고 살게 넘쳐나며 글도 잘 쓰고 새로운 영감이 계속 떠오르며 몸도 너무 건강하고 사회적 조건들과 귀족적인 파티들이 너무 지겨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인류 역사에 얼마나 될 것인가. 그에게 죽음은 그 모든 넘쳐나는 행복에 대한 박탈이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죽음은 오히려 안식일 수 있다(어떻게 생각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런 거대한 차이점을 생각해본다면, 창백한 푸른 점을 이따금씩 묵상하는 나의 태도가 왜 허무주의로 이끌지 않는지 역시 너무 잘 알 수 있다.
지난 나의 모든 세월은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우주 공간(사실)을 고찰하듯이 있는 그대로의 나와 내 인생 그리고 이를 둘러싼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의 마음 상태로 고찰한다.
오늘도 나는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아주 거대한 공간 속에 작은 파란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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