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몸과 마음을 활용해서 삶의 속살과 실체를 느낀다. 때로는 직접 보거나 직접 느끼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일 수 있다. (물론, 읽는 글의 모든 내용과 요소를 삶에서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는 애기는 아니다. 그런 식으로만 배워야한다면 들이는 어마어마한 시간에 비해 얻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배움의 길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직접 스스로 반복하는 것이다. 특히나 중요한 것일수록 직접 삶의 현장에서 배우고 도전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실수와 실패이다. 도전하는 사람은 새로운 과정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충분히 얼마든지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다. 그만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한 실수와 실패는 필수적이다. 실수와 실패는 그만두고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시 도전하라는 의미이다. 실수하고 실패를 겪게 되면 느끼고 배우는 것이 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배웠던 지혜를 가지고 다시 도전해보면 된다.
'사랑'이라는 뜻을 생각해보자. 내가 생각하기에 많은 철학자들이 오해하고 놓쳤던 핵심 부분은 '사랑'같은 단어를 정의하려고 했던 데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해서 그들은 오직 지성과 두뇌만을 활용해서 사랑을 보려고 했다. '사랑'같은 '실체'는 직접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활용해서 느끼고 실천하고 행동할 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사랑'에 관한 책이 백 만 권이 있어도 약자를 잡아주는 누군가의 따듯한 손길 1초보다도 가치가 없을 것이다. 좀 더 실용적으로 말해서 '사랑'의 실체에 관해서는 why? why? why? 이런 질문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사랑을 어떻게 더 지혜롭게 표현할 수 있는지, 어떻게 건강한 사랑이 더 오래 유지되는 것인지 등에서 우리는 충분히 지성을 활요하고 생각해서 명쾌하게 대답하고 실천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내가 위에서 말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사랑의 '실체'였다는 것을 기억하자.
고난과 역경을 이겨나가는 것도 모두 백독백습삼매에 포함된다. 그리고 한 가지 첨언하자면, 고난과 역경의 시기에는 지혜로운 가르침들과 삶에 유익한 명언들, 연설들이 마치 스펀지같이 빨아들여지는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사람이 편안한환경에만 있으면 발전이 없다. (물론, 때에 따라 편안한 환경은 필요하고 신께 감사한 일이다.) 어느 정도로 힘들지 않으면 발전은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힘든 길로 가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노력하고 발전하는 데에 어느 정도 힘듦은 필수라는 것이다.
독서백편의자현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책이든 100번 읽으면 스스로 그 뜻이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 말을 직접 몸으로 경험해보았다. 19~20살 때의 나는 정말 우연의 기회로 (혹은 신causa sui의 섭리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고 처음에 나는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후에 미친듯이 노력해서 그 책을 149번이나 읽었고 나는 그 책의 내용 전체를 완전히 통달하고 흡수하였으며 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후 나는 이 독서방법을 일컬어 '백독백습삼매'라고 명명하였다. 이 방법의 핵심은 정말 정말로 좋은 책을 찾아서 그 책들을 100번 넘게 읽으며 통달하는 것이다.
토론을 하거나 직접 대화를 하는 방식이나 누군가를 가르쳐 볼 수 있는 기회 모두 역시 최고의 학습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남들과 대화를 하거나 가르쳐보게되면 내 생각은 어떤지 내 이해도는 어느 정도인지 상당히 명확해진다. 가르쳐보는 건 자신의 이해도를 높이는 동시에 자신의 이해정도를 점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체크방식이다. 그리고 '난 똑똑해' '난 잘났어'따위의 방식으로 대화나 토론을 하지 않기를 권한다. 설령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말이다. 왜냐하면, 그런 대화는 무의식 중에라도 자신의 뇌에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는 관점을 주입하기 때문이다. 너무 겸손을 떨 필요는 없지만 너무 교만할 필요는 없다. 너무 낮은 겸손은 공허를 낳고 너무 높은 교만은 패망을 부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남들에게 굳이 나 자신을 드러내보이고 이해시키려고 애쓸 이유는 없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고 문제해결에도 도전해보고 얼마든지 피드백을 받아보라. 삶을 직접 즐겨라!
구원자의 초기 모습은 바보, 어릿광대이다 (그러므로 삶은 기꺼이 바보가 되고 실수와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자의 것이다.) -칼 융
'여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에 관한 짧은 이야기 (0) | 2020.12.11 |
---|---|
재능 (0) | 2020.11.22 |
감사에 답이 있습니다 (0) | 2020.11.19 |
감사합니다 (0) | 2019.09.12 |
차라리 개를 기르는 것이 낫다. (0) | 2019.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