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죽였어요” 그는 말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경찰관인 나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리고 그는 진술을 시작했다. “이틀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친구랑 저녁을 먹고 나서 헤어졌는데 약간 공허함이 느껴지더라구요. 시간도 좀 남고 해서 클럽에 갔습니다. 클럽에서 한창 춤추고 즐기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몸매가 정말 예뻤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다가가 작업을 걸었고 그녀도 좋다고 싸인을 보내길래 같이 가볍게 술 좀 먹다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가깝기도 해서 바로 제 집으로 갔습니다. 술도 좀 더 먹고 키스도 하니 취기도 오르고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습니다. 저는 바로 옷을 벗었고 위에서 그녀를 애무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그녀가 단호하게 거절하더라구요. 아니, 도대체 왜 좋다고 했으면서 갑자기 아니라는건 뭡니까? 그녀한테 왜 내 집에 따라왔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같이 술 먹고 얘기나 좀 더 할 줄 알았다는 거에요. 저는 화가 나서 걔를 때렸습니다. 그때쯤 슬슬 본전 생각도 나고 몸도 뜨겁게 달아올라서 그런지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화가 나고 취기도 돌아서 그런지 걔한테 가서 그냥 강제로 하려고 했습니다. 상의를 찢어버리고 반항하는 팔을 위로 젖혀 강제로 눕혔는데 갑자기 나를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벌레 보듯이 쳐다보잖아요? 그래서 너무 화가 나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더 때렸습니다. 막으려고 팔로 얼굴을 감싸길래 팔이 감겨있는대로 난타질을 했습니다. 막 때리다보니 화도 조금 풀리고 술도 조금 깨서 뒤에 철푸덕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 벌레 같은 X이 문으로 기어가더라고요? 이 X이 미쳤나 싶어 다시 머리채를 잡고 부엌에서 칼을 꺼내서 바로 찔렀습니다. 찌르고 좀 있다가 보니 아차 싶더라구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하며 멍하게 앉아있다가 나중에서야 맥을 짚고 코에 손을 갖다대봤습니다. 숨이 천천히 꺼져가는게 느껴졌습니다. 바닥은 피로 흥건해졌구요. 잠시 멍하니 앉아서 그 상황을 생각하는 순간이 영원히 멈춘 듯 했습니다. 온갖 별별 생각이 다들더라구요. 결국에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시체를 버리고 사건을 은폐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작위로 만났고 실종신고를 누군가 하더라도 제가 용의자로 떠오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거 같았고 잘만 숨기면 증거도 없으니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여행용 거대캐리어를 꺼내서 그 시체를 적당히 자르고 구겨서 처박았습니다. 흥건한 피는 비닐로 넢었고 캐리어를 꽉 닫아서 최대한 피가 흘러나오지 않게했습니다. 캐리어가 잘 닫혀있는걸 확인한 후에 락스를 가져와서 방바닥을 닦았어요. 넘치는 피는 통에 담아 변기로 전부 내렸고 남은 피랑 방바닥은 걸레로 빡빡 문대서 지웠습니다. 바닥은 다행히 잘 닦이는 재질이라 오기 전이랑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살해흉기인 칼을 챙겨서 캐리어를 끌고 동네 뒷산에 올라가 구덩이를 팠습니다. 구덩이 속에 캐리어를 집어던지고 잡히지 않길 바라면서 칼이 담긴 비닐봉지도 위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구덩이를 메웠어요. 슬슬 밤이고 해서 으슥해지니 뒤도 안 보고 뛰어내려왔습니다.” 이렇게 그의 진술이 끝났다.
나는 바로 물었다. “잡히지 않을거라 생각했으면서 왜 자수한 건가요?”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덤덤할 줄 알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조용히 지나갈 줄 알았어요. 근데 그 일은 출근할 때도, 일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계속 떠올랐습니다. 죽인 장면과 아차했던 그 느낌이 고장난 라디오처럼 하루 종일 반복 재생 됐습니다. 이게 흔히 말하던 죄책감인가 싶어 너무 괴로웠습니다. 새벽에도 편하게 잠에 들 수가 없었어요.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왜 눈물을 흘렸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죽인 그의 기억은 어느새 그를 깨우는 알람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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