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의사는 내게 물었다.
“글쎄요. 책을 제법 많이 읽어서.. 문학 쪽으론 볼테르하고 셰익스피어를 좋아했던 거 같네요. 감명깊게 읽었다고 할 수 도 있구요. 특히 캉디드 끝부분 문장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 합니다’ 이건 금으로 수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소에 수학책도 취미로 즐겨 읽었구요. 가장 많이 읽은 철학책은 플라톤 대화록이에요. 그런 책들은 읽으면서 논박하고 논리적으로 토론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책을 읽고 그런 내용에 관해 얘기할 때 정말 행복했었어요. 지금도 그렇구요.”
”역시 당신은 책을 정말 많이 읽었군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자신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같았던 느낌을 받은 적은 있나요?“
”한때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은 있어요. 주인공 같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6살 때였나요. 아마 그 때 쯤이었는데 엄마가 제게 그랬거든요. ’너가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하셨어요.“
”훌륭한 엄마네요.“
”네.. 뭐 아무튼 그 이후로 저 자신을 주체로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건 맞아요. 그래도 저 자신을 책의 주인공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럼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다만 무엇인가something 있다고 항상 느껴졌어요.“
”그게 뭔가요?“
”왠지 제가 남기는 기록이 남을 것 같다는 기분? 몇 세기에 걸쳐서 저에 관한 얘기가 지속될 것 같은 그런 기분?“
”역시 사이코네“ 의사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
”아 아니에요. 헛기침이었어요. 네.. 계속 말씀해주실래요?“
"아무튼 책의 주인공이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다만, 제게 남들과는 다른 무엇인가 있다고 느낀 게 전부에요.”
“그건 지능일까요?”
“음, 젊었을 때는 믿음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했던 것 같아요. 나이를 좀 더 먹고 나서는 믿음이라기보다는... 예.. 지적능력이라고도 말할 수는 있겠네요. 지적인 능력이 전부는 아니지만요.”
“네.. 혹시 이것 좀 봐주실 수 있나요?” 의사는 이렇게 물으며 내게 5장 정도 되는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종이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최선의 수를 찾으시오‘ ’흑을 5수 안에 체크메이트 하시오‘ 체스였다.
“...그 다음 룩을 B8에, 나이트가 룩을 먹고, 퀸을 D8에 두면, 체크메이트 ...”
나는 얼마 걸리지 않아 의사가 내게 준 체스 문제를 전부 풀었다.
“대단하네요... 당신도 알고 있나요?” 의사가 내게 물었다.
“뭘 말이죠?” 나는 간략히 대답했다.
“이 문제들 중에 2문제는 프로들도 쉽게 풀지 못한 문제에요. 체스 엔진들이 풀어낸 문제에요. 현재 챔피언조차 풀지 못한 최강의 수를 훨씬 더 짧은 시간에 당신은 맞췄어요. 정말 대단하네요.”
“뭐 그정도 가지고 그래요? 제가 예전에 밖에 있을 때, 체스 퍼즐을 심심풀이로 풀고 그랬거든요. 그 때도 체스 프로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들을 아주 쉽게 풀었던 적은 많아요. 그래도 제가 직접 체스를 두면 프로들을 못 이기는걸요. 애초에 저는 프로도 아니구요. 가끔 문제들을 직관력으로 풀어내는 거랑 경기 전체를 전략으로 운영해나가는 건 많은 차이가 있어요. 제 취미 중 하나가 퍼즐, 어려운 문제 풀기라서 이런 걸 잘 푸는 것 뿐이죠.”
“네, 맞죠. 다만 이런 결과들을 보니까 예전에 몇몇 다른 의사들이 저한테 준 데이터가 이해가 되어서요. 정신병은 있지만 머리가 아주 똑똑하고 지능도 높고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은데다가...”
“네? 정신병...?”
“아, 아뇨 그 단어는 잊어요. 아 그리고 당신은 엄청나게 논리적이에요. 논리적인 것에 관해서 아마 당신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일지도 몰라요. 제가 전 세계 사람들을 전부 측정한 건 아니라서 모르겠네요. 당신같은 케이스는 처음 만났습니다. 아마 그래서 동료 의사들이 당신한테 더 관심을 두는지도 모르겠네요.”
“좋은 건가요?”
“아 아뇨.. 다만 당신이 정말 특이케이스라는 것 뿐이죠.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에요.”
"혹시 하실 말씀 끝나셨으면 가서 좀 쉬어도 될까요?“
”아.. 네 음...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 의사는 내게 물었다.
”네 물어보시죠.“ ’이 의사는 정말 나를 귀찮게 하는군‘ 나는 이렇게 느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논리적일 수 있는거죠? 어떤 비결이 있나요? 아니면 당신의 정신병하고도 관계가 있다고 보시나요?“
”... 일단 질문의 전제에 대해서 먼저 말을 하자면... 저는 스스로 정신병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거기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도 전혀 발견 못 했구요. 지금까지 제게 주어진 데이터와 경험에 근거해볼 때 저는 스스로에게 정신병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논리적인 사고에 관해서 말한다면, 저는 명확히 말할 수 있어요. 연습이에요.“
”연습이요?“
”예, 예전에 하루 12~14시간 가까이 논리적인 사고를 깊게 연습했던 기간이 있었거든요. 제 논리적인 사고 능력은 다 그 때 생긴거에요.“
”정말 흥미롭네요. 어떻게 연습하셨다는 거죠?“
”지금은.. 그것까지 얘기하고 싶지는 않네요. 나중에 얘기하죠.“
”아.. 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상대적으로 온순한 이 의사는 이렇게 얘기한 후에 밖으로 나갔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나만의 공상에 잠겼다. 예전에 책을 정말로 사랑했던 그 때가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책을 정말 많이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던 토론과 강연 시간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 때의 즐거움을 회상하며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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