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나 역시 전혀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일로 이 곳에 와 갇혀있는 것인지 나 또한 알지 못한다. 기억난다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이곳에 갇혀있다.
“당신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까?” 의사가 물었다.
“아니요 기억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명확히 모든 게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다만, 그 기억이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럽기에 그 기억에 담긴 함의가 무엇인지 너무나 정확히 알기에 그 기억으로부터 저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합니다.” 나는 대답했다. 나는 지금 여기 정신병원에 와 있다.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곳에 와있다. 하루하루 끔찍스러운 고통의 나날들 그 고통의 반복들...
처음에 나는 의사에게 설명해보려고 했다.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나에게도 충분히 지각이 있다는 점을 열심히 설명해보려고 했다. 모든 의사가 듣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의사는 귀기울이는 것 같았기에 열심히 말해보려고 했다, 너무 괴롭고 고통스럽다.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되었다. 내 말을 듣는 것 같았던 의사는 내 정신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었고 그는 진작에 내 정신이 미쳤음을 전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커다란 좌절에 빠지고 말았다.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요? 제가 정말로 미쳤다면 어떻게 이렇게 정상적으로 당신과 얘기할 수 있을까요?” 나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항변했다.
“당신은 지능이 매우 높습니다.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당신의 지적능력은 상위 1%에 속해있어요. 어쩌면 그것보다 더 높을 수도 있구요. 당신 정도의 지능이라면 미쳤으면서도 매우 합리적으로 조리있게 얘기를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선입견과 편견에 가득 찬 의사는 내게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예전에 한 심리학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모두 어느정도 편집증적인 성향과 불안감 같은 기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당신이 미쳤다고 말할 때에는 당신의 편집증이나 불안감 같은 감정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당신은 그런 감정을 오히려 일반인보다 적게 느끼는 편이죠.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당신은 ‘다르게’ 느끼는 편입니다.” 의사는 빠르게 내 말을 받아쳤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가 미쳤다는 건가요? 거기에 구체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건가요?” 나는 의사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예, 당신이 미쳤다고 할 때 ‘미쳤다’는 말의 의미는 당신이 너무나 허황된 것을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허황된 거요?”
“예, 솔직히 당신도 인정하지 않나요? 당신이 상상하는 욕구taste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걸요. 당신은 즐거운 대상을 상상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활동 그 자체에 빠져있어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요? 소설가도 상상을 합니다. 심지어 유명한 칼 융이라는 심리학자조차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백일몽을 꾸었다고 했고 자신의 상상적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어 그걸 책으로 쓰기도 했죠. 평범한 사람들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상상을 하고 종종 망상에...”
“아니요. 당신의 상상은 그것과 다릅니다. 굳이 비교해서 애기를 하자면, 당신은 존 내쉬같아요.”
“예?” 나는 반문했다. '나는 상상적 인간을 본 적이 없는데?'
“영화 뷰티풀 마인드 보셨나요?”
“예.. 물론 봤는데요.”
“뷰티풀 마인드에 보면, 물론 각색이기는 해도 존 내쉬가 어떤 정신병을 겪고 어떤 망상에 사로잡혔는지 나오잖아요. 당신도 이와 증세가 유사합니다.”
"아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저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을 본다든지 하는 그런 증상은 전혀 없는데요. 적어도 제가 아는 한에서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예 물론, 당신은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 속의 인간을 보거나 하지는 않겠죠. 그러나 당신도 똑같이 당신만의 상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당신의 상상은 세상이 보여주는 현실과도 다릅니다, 현실과는 구분되죠. 당신은 현실과는 상관없이 당신의 상상 속에 갇혀 그 상상 속을 거닐 수 있어요. 존 내쉬가 자신이 암호 해독 천재였다는 생각에 빠져 스스로 러시아 스파이에게 쫓긴다고 상상한 것처럼 당신도 그런 상상의 욕구taste에 빠져있단 말이에요.“
”아.. 아니... 저는... 그런 성향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요? 누구나 상상에 빠지곤 하잖아요? 당장 빅터 프랭클 박사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 만 해도...“
"네, 오늘 진찰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고생했어요. 좀 쉬어요.” 의사는 이렇게 간단히 말하고 일어선다. 그는 문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 전에 잠시 나를 뒤돌아 보더니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아, 그런데 ‘모두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말 많은 정신병자들의 변명인 건 아시죠? 특히나 당신같이 똑똑한 정신병자라면 거의 예외 없이 그런 말을 하곤 하죠.”
아니.. 저게 의사의 진찰이란 말인가. 저렇게 간단한 몇 마디 문장으로 나라는 사람의 인격과 앞으로 삶을 결정지을 수 있단 말인가. 저 사람에게 이러한 권한을 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의사가 밖에 나가고 문을 닫은 이후에, 나는 혼자 공간에 가만히 누워 내가 정말로 미쳤는지 자문해본다. 나의 정신은 보통의 경우엔 합리성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 정신병의 증거나 증명을 보여준다면 나는 스스로 미쳤다고 결론을 내릴 만한 사람이다. 하지만, 방금 의사가 보여준 것은 편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상상을 깊게 하는 건 맞지만, 상상을 하느라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부류는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 충실해서 열심히 살아온 적도 많지 않은가..
'상상의 날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람 (단편입니다) (0) | 2020.12.18 |
---|---|
정상인 정신병원(2) (0) | 2020.12.13 |
상상(3) (0) | 2019.05.27 |
상상(2) (0) | 2019.05.27 |
상상(1) (0) | 2019.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