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시간의 독서로 누그러들지 않는 어떤 슬픔도 알지 못한다.” (몽테스키외)
“헤어져”
약 2년 전 나는 잘 만나고 있었던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일방적으로 말했다. 당연히, 그녀는 놀란 듯이 나를 한동안 멍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서로 알고있었다. 나와 그녀는 결코 결혼할 수 없는 사이였고 곧 군대에 가야 하는 나를 기다릴 여유는 그녀에게 없었다.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매우 덤덤하게 말했지만, 그 후 약 2개월동안 많이 아팠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와 관련된 수많은 기억들을 잊으려고 발버둥쳐야했으니까. 한 달이 지난 후 이불 위에 누워서 나는 ‘그냥 기억하자’고 혼자 되뇌였다. 어차피 잊으려고해도 잊혀질리는 없으니까 차라리 그냥 간직하고 계속 살아가자고 생각했다.
그즈음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세워온 목표도 날아간 느낌이었고 (다행히 느낌만 그런 거였지만-전역하자마자 곧바로 기회가 다시 왔다.) 가족과는 거의 매일 심각할 정도로 싸웠다. ‘연을 끊어버리자’ ‘각자 갈 길 가자’는 말이 거의 매일 나왔다. 수많은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어버렸고 (다행히 그런 상황에서도 꾸준히 연락을 준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도 가장 고마운 친구들이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나 교수님들 혹은 협력했던 사람들Network하고도 연락을 다 끊었다. 너무 너무 괴로워서 매일 술로 달래야 할 정도였다. 친구도, 연인도, 목표도, 일도, 가족도 모든 게 다 떠나가버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생애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을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더욱이 여러 권의 책을 가진 사람은 행복을 다한 사람이다.” (몽테를랑)
괴롭고 아무것도 없었다. 한강에 가야했을까? 어쩌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한강산책을 가장 좋아한다 ㅎ) 굳이 살아야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으니까.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책을 펼쳤다. 가장 힘든 때, 가장 괴로울 때마다 나는 좋은 책을 다시 펼쳤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오직 고통만이 끝없이 계속될 거 같을 때 좋은 책들은 언제나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했다. 좋은 책들을 읽으며 나는 매일 부활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비난을 가하고 욕하는 상황에도 내 곁에 있는 좋은 책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내 곁에 다가와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고 조용히 내 어려움을 들어주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넌지시 가르쳐주었다. 책과 함께 무아지경에 이를 정도로 시간을 나누다보면 다시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서재에서 네 시간쯤 보내다 보면 세상사를 잊고 짜증나는 일들도 모두 잊는다. 가난도 더 이상 무섭지 않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떨리던 마음도 편안해진다.”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작은 농장으로 쫓겨난 後) 마키아벨리
8살 때 셜록홈즈랑 아르센뤼팽을 읽었다. 전집을 모두 구매해서 닳도록 읽었다. 14살 때 한창 사고를 치고다니면서도 나는 매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같이 노는 친구들이 이상한 녀석이라며 손가락질했지만 개의치는 않았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 게 너무 너무 재미있었으니까!! 17살 때 너무 괴로워서 발버둥 칠 때 김진명의 고구려를 읽었다. 고구려 1~6권 모두 17번 넘게 읽었다. 18살 때 아리스토텔레스 오르가논을 150번 읽었다. 오르가논을 읽으며 엄청나게 깊은 생각을 할 때는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잊고 즐거움의 세계를 너무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행복은 다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최상의 행복이었다. 지금도 나는 합법적인 선 안에서 성인 남자가 할 수 있는 즐거워 ‘보이는’ 일들을 다 해보았지만, 그 때의 그 즐거움과 행복감은 결코 맛볼 수가 없었다. 최상의 몰입에서만 가능한 유레카의 기쁨. 그것은 가장 높은 천국에서 먹을 수 있는 포도주의 달콤함보다 달았다. 내가 느낀 행복은 천사가 만든 포도주보다 농도가 짙었다.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수단 중에서 수학이야말로 으뜸이다. 수학은 점점 더 중독성을 띠면서 환상의 세계가 된다. 다른 모든 도피수단들, 즉 섹스, 마약, 취미 생활 등은 모두 수학과 비교하면 덧없을 뿐이다. 이 세계는 자신이 창조해낸 법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성취하면 수학자는 승리감을 만끽한다.” (Gian-Carlo Rota)
솔직하게, 가장 힘들었던 시간마다 책이 없었다면 나는 삶의 끈을 놓았을 것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가장 힘들었던 시간마다 내 곁에는 좋은 책이 있었다. 그래서, 내게는 지금도 좋은 책들이 가장 사랑스러운 보물이며 내 삶을 구원한 구원자이고 가장 큰 행복이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책을 펼친다. 10번 넘게 읽은 좋은 책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좋은 책들을 읽을 때 너무 행복하다. 이렇게 좋은 책들이 내 곁에 있어서, 좋은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좋은 책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너무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지독한 책읽기에 빠져봐라. 그것은 너의 불행한 존재에 열정을 일깨워 줄 것이다.” (루이 가브리엘 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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