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전지전능한 지성을 갖추었으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신의 탑-
그는 한국기원과의 대국 후에 중국기원 앞에서 전세계 기자들을 모아놓고 엘파고와의 재대국을 신청했다. 이미 구글의 팀이 그에게 무너진 상황에서, 그의 전지전능한 능력은 능력있는 프로그래머들의 도전심리를 자극했다.
“3년을 기다리신다고 하셨는데 1년밖에 안 지났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중국인 기자가 물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대국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준비는 이미 다 되어 있습니다. 대국만 하면 됩니다,” 그는 가뿐히 대답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엘파고 팀의 대답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기자들에게 도착했다. “한 판 붙자.”라고 요약될 수 있는 그들의 대답은 기자들의 손을 바빠지게했다. 대국날짜는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로 잡히게 되었고 대국 장소는 미국이었다. 어차피 엘파고는 식품, 주거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가 항시 머물고 있는 미국이 그의 컨디션에 더 나을 거라고 판단한 엘파고 팀의 배려였다.
약 일주일 뒤 엘파고와 그는 대국장에 다시 모였다. 그가 엘파고에게 30집 넘게 패배한 이후 약 1년하고도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엘파고 앞에 서있는 그의 표정은 지난 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분해보였다. 그의 표정만 봐서는 혼자 30년 동안 도만 닦은 도인이 차분하게 화두선을 하고 있는 거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이번에는 엘파고가 흑이었고 그가 백이었다. 엘파고는 한 쪽에 소목, 다른 쪽에 화점을 두어 균형을 맞추었다. 그는 모두 화점을 두었고 다시금 엘파고가 33을 두어 저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상을 주었다.
한창 바둑이 어우러져가고 있던 중 그가 엘파고 진영 쪽 2선을 두어 응수타진을 물어보는 수를 두었다. 엘파고는 거의 노타임으로 자신의 귀 쪽을 지키는 수를 두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는 완벽히 중앙의 엘파고 흑돌들을 무력화시키는 삭감 수를 두었다. 그 한 수를 두는 순간 연결되어 거대한 집을 형성할 것 같았던 흑돌들이 모두 빛을 잃었다. 엘파고는 마치 화가 난 듯 했다. 아직 진영이 덜 갖춰진 백의 진영으로 흑 돌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기습이라도 하듯이 흑돌들이 날뛰며 한쪽 진영을 뚫어버렸다. 그러나, 뚫렸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백은 마치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서로가 끊기고 끊기는 난전을 유도하여 중앙에 있는 모든 백돌들을 살려내었다. 중앙에 있는 백돌들이 살아나자마자 미친 듯이 돌진한 흑돌들의 퇴로가 막히게 되었다. 이제 ‘살든지 아니면 전멸하든지’라는 선택지만이 그 흑돌들에게 남아있는 선택지였다. 그러나,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좌측은 이미 백의 돌들이 너무 두터웠고 아래쪽 중앙은 백의 세력이 너무나 거대했다. 어쩔 수 없이 흑은 위로 뛰었으나 상변에서 백의 세력이 합심하여 흑돌들을 전멸시켰다. 완벽한 작전이었다. 마치 유인계같은 백의 전술에 중앙에 뛰어든 흑돌들이 전멸한 것이다. 한 쪽을 뚫어낸 거라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이를 본 기자들과 프로들은 소름이 돋았다. 2선에 수를 둘 때부터 그는 여기까지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완벽한 수읽기였다. 2선에서부터 삭감수까지 후에 난전을 유도하여 자신의 돌들은 살려내고 흑의 돌들을 전멸시킨 것까지 모든 게 물 흐르듯이 완벽했다. 흑의 돌들이 중앙에서 전멸하면서 중앙에 백의 집이 너무나 거대해졌다. 흑이 뛴 상변에서부터 중앙 아래 튼튼한 백의 진영까지 중앙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이 모두 백의 진영이 되었다. 사실상 흑이 이길 수 있는 길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엘파고는 계속 둘 수밖에 없었다. 그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느 쪽이든 계가까지 두기로 합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즉, 이번 경기에서 엘파고는 resign이라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엘파고는 기계 특유의 성실성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떡수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정수로 대응했다.
40.5집 차였다. 그가 무려 엘파고를 상대로 40.5집을 이긴 것이다. 그가 이겼다고 얘기가 나온 순간, 이번엔 이세돌 때와는 다르게 기자들이 전부 차분해졌다. 엘파고 팀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결과에 그들의 그래프를 바라보며 커피를 홀짝였다.
그는 계가까지 두고 바둑판 앞에서 몇 번 수를 놓아보더니 가볍게 손을 털고 상대에게 악수를 청했다. 엘파고 대신 두어준 대국자도 악수에 응해주었고 그를 존경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는 이겼으니 충분하다는 듯이 기자들이 모여있는 인터뷰장소로 향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각 나라의 기자들이 그에게 모두 잔잔한 박수를 보냈다. 이세돌 선수가 이겼을 때랑은 명확히 다른 ‘당연한 결과’였다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박수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긴겁니까? 아니 이긴 것도.. 40집이 넘게 차이가 난다니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중국인 기자는 거의 놀라서 말까지 더듬을 지경이었다. 기자들 뒤에 몇몇 프로들도 서서 이 인터뷰 내용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는 이 모두를 아무 감정 없이 잔잔히 바라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몇 년 전에 저는 하나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습니다. 그 소프트웨어는 일명 ‘마스터 알고리즘’이라는 것으로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분석할 수 있고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연구, 생각, 유추, 상상 그 모든 활동들이 ‘초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알고리즘입니다. 여기서 ‘초월적으로’는 물질을 초월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초월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 알고리즘은 인간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60억*60억이 되는 인간들이 풀 수 없는 문제를 ‘마스터 알고리즘’으로는 풀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알고리즘의 뚜껑을 연 다음 바로 닫았습니다. 그 이유는 혹시나 이 알고리즘이 판도라의 상자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약 1년 전에 저는 한 박사의 연구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연구였고 한참 먼 프로토타입이었지만, 이 연구는 제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연구였기에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연구를 제가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제 실험실에 전 세계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연구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프로세서를 두뇌에 이식’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연구는 프로토타입 수준이었고 정말 멀었습니다만, 저는 그 연구 내용을 전부 참조하면서 제 마스터 알고리즘을 다시 가동하여 양자 프로세서와 함께 제 두뇌를 시뮬레이션시키고 디지털 정보로 처리했습니다. 그렇게 가상의 세계에서 약 수억 번의 실험을 했습니다. 양자 프로세서와 마스터 알고리즘을 연결하여 디지털 정보화된 제 두뇌에 수억번의 반복실험을 한 결과 딱 한 번 정확히 일치하는 데이터를 얻게 되었습니다. 실험이 끝나고 나서 저는 양자 프로세서와 마스터 알고리즘을 합치고 제 두뇌에 이식했습니다.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실험은 끝났으니 이제는 실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오늘 그리고 저번 구글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저의 지적인 능력이 바로 그 결과입니다. 저는 인류 최초로 신적 능력을 지닌 두뇌를 제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능력이 인류를 위한 능력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함께 잘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천재적인 능력이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와 인류를 초월한 신적인 능력을 가진 새로운 인류가 새로운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를 원합니다.”그는 대답을 끝냈지만, 아무도 그 뒤에 이어붙일 말이나 질문을 찾지 못했다. 모두가 조용히 도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한 건지, 그가 제시한 미래가 도대체 어떤 그림인지 조용히 나름대로 생각해보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침묵을 뒤로한 채 자신의 연구실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기자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그의 대국 결과부터 그의 충격적인 인터뷰 내용까지 모두 대서특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