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의 문제는 오히려 너무 간명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그냥 대충 맞다고 전제를 깔아보자
자 믿음으로 칭의를 받는다 치자
그러면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믿으면 땡인가? 그래서 그 다음에 뭘 어쩌란 얘기인가?
누군가 어떤 목사는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고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못 믿는 사람들에게 이 메세지(복음)를 전파하여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okay 좋다
그렇다면? 학문은? 삶은? 결혼은? 밥 먹는 것은? 축구는? 비행기는? 음식은? 일하는 것은? 편지는? 셰익스피어는? 용의자는? 살인은? 법은? 정치는? 코드는? 수학은? 존 그리샴은?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솔직하게 우리가 진짜 진심으로 바라보았을 때, 일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생각 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그 일을 엄청나게 즐기면서 할 수 있다.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그러면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할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위에 나와있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고 그것만이 중요하다'라는 개소리에 따르면 일의 중요성은 혹은 삶의 다양성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 내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는 바로 이러하다. 모두가 복음전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개신교를 믿는다고 하여도 복음을 전업으로 전하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절대 다수는? 개신교를 믿는다 해도 대다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전업으로 복음을 전하며 살 수는 없다. 그들은 그러면 일을 할 때 혹은 공부를 할 때 혹은 다른 중요한 모든 일을 할 때 무엇을 해야 되는가? 그냥 믿음으로 할렐루야만 하고 있으면 되는가??
이런 얘기를 하면 무슨 얘기를 할지 알고 있다. 박총 목사님 얘기라든지, 팀 켈러라든지,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마르틴 루터, 창세기, 시편, 잠언 혹은 기타 등등 얘기를 하면서 이리 저리 인용구를 끌어다가 '잘 봐라 여기 쓰여있지 않냐'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겠지.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 공허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일을 할 때 적절한 method를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일을 잘 되게끔 하는 것과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에 맹목적으로 미쳐가지고 예수 예수 오 예수만 찾아댕기면서 일을 보지 않으려 하다가 일에 관한 성서 구절 몇 개 찾는 거랑은 우주와 지하 만큼의 차이가 있다. 성서에서 그런 구절을 찾을 수 있다고? so what? 그런 구절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당신들이 얘기한 개신교의 핵심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고, 오직 우리의 지쟈스 만이 중요하다면서 그런 구절을 갑자기 인용한다고 하면 거기에서 무슨 설득력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
자 핵심을 정리해보자
개신교, 기독교 근본주의는 삶의 다양성과 구체성을 놓칠 확률이 매우 높다
그 이유는 개독교의 핵심이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칭의에만 너무 집중하느라 그 다음 삶을 놓치거나 구체성을 아예 놓치는 것이 개신교가 공허해지는 가장 큰 이유이다 (조금 다른 식으로 말해서, 개신교를 너무 믿는 사람들은 세상이라는 것은 눈에 보지도 않고 교회에 가서 죽어라 하나님만 찾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당신들 교회의 뒷방 아주머니가 아니다 우주의 하나님을 당신들 작은 교회의 하나님으로만 제한시키지 마라) 그들의 메세지가 단순명료하다는 것은 장점인 동시에 가장 큰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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