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와 비슷하게 말했다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핵심 논리는 같다)
1) 신은 사랑이셔서 피조물을 온전히 사랑한다
2) 신은 지혜로우셔서 피조물을 전부 다 아신다
3) 신은 전능하시다 그래서 모든 걸 할 수 있다
신은 위에 나오는 세 가지 특질을 모두 다 갖추고 있다. 따라서 그런 신이 피조물과 우주를 만든다면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찬 우주를 만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므로 그런 신은 없다.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정말 그럴까? 가장 지혜롭고 가장 전능하며 사랑이신 분이 고작 365일 24시간 먹고 먹어도 부작용 없고 질리지 않는 마약을 파는 마약상 정도 수준이어야 적합한 것인가? 신이 고작 365일 24시간 마약만 공급하는 존재라면 이 세상은 도대체 얼마나 따분할 것이고 그런 신은 우리 애기들 보다 못한 존재일 것이 틀림 없다.
따라서 위의 논증은 논리적인 면이 있지만 그 안에 우리의 유아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1살은 모유를 원할 것이고 8살은 사탕을 원할 것이다 10살은 추리문제를 20살은 돈을 원할 것이다 30대는 행복한 가정을 원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의식 수준에 따라 신에게 구하고 바라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어째서 왜? 신이 고작 365일 24시간 질리지 않는 마약을 파는 상인에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가?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이 세상의 모든 명작 영화와 드라마를 본 적이 없는가? 그 모든 명작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그 안에는 고통과 눈물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가? 어떠한 고통도 눈물도 없다면 이 세상엔 이야기가 없고 드라마도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이 즐겁기만 하다면 그것만큼 지루하고 재미없는 즐거움이 있겠는가 오 지루한 즐거움이여
당신이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주는 가치와 아름다움을 신은 너무나 무지하여 깨달을 수 없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세상에는 왜 이렇게 고통이 많은가 묻는다. 틀린 의문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께 정말 물어보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정말 엄청난 고통을 받은 적이 있는가? 객관적인 통계로 볼 때 당신은 고통보다는 꿀을 빨았을 확률이 높다(물론 당연히 많은 고통을 받으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박격포를 들고 훈련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당신은 폭탄에 의해 죽을 뻔한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당신은 수십 번이 넘는 죽을 고비를 넘겨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당신은 얼어죽을 뻔한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당신은 굶어죽을 뻔했던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당신은 지옥에 강제로 갇혀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이 얘기를 하는 것은 내가 당신보다 고통받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당연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나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고통을 받으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내용을 통해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고통과 행복은 어느 정도는 마음에 달려 있는 문제라는 것이었다. 재벌 2세로 모든 것을 누려도 자살할 수도 있고 아무 것도 없는 천애고아도 정말 행복하고 성실하게 인생을 살 수 있다. 그게 인생이고 그게 사람 마음이다. 즐거움과 행복, 감사와 아름다움은 어느정도 내면에 있다. 신은 이걸 알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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