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이야기

신기하게도 적응되더라 (층간소음에 관한 고찰)

영웅*^%&$ 2022. 3. 13. 22:56
728x90

내 윗집에 정신 지체 아이가 산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이 밤인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뛰어댕기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진풍경이다. 윗집은 내가 느끼기에는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기본 수칙조차 전혀 숙지 하지 못한 거 같다. 윗집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걸어다닐 때도 쿵쿵 대면서 걸어다닌다. 하물며 정신이 조금 안타까운 아이는 거의 날아다니는 지경에 이른다.

아마도 윗집에서 장풍을 연구하는 듯 싶다. 혹은 한국의 최신 거주지인 아파트가 어느 정도의 내구성을 가지고 있는지 튼튼한 두 다리로 직접 실험해주고 있음이 틀림 없다.

윗집에 무례한 친구들이 주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엄청난 층간소음을 처음 들었을 때 나의 반응은 아주 기본적인 인간의 반응이었다. 분노 -> 부정 등등 힘든 일을 맞이하는 인간의 기본 심리를 풍성히 경험하다가 최근에 나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지금의 내게도 가장 놀라운 부분인데.. 층간 소음 ... 적응 되더라..

진짜 항상 느끼는 건데 인간의 적응력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상황이어도 살아만 있다면, 인간은 결국엔 적응한다.

솔직히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유튜브에서도 아이만 나오면 바로 다른 영상을 틀어버릴 정도로 아이를 안 좋아한다. (내 생각에) 지금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실수이고, 어떤 모종의 오류로 아이라는 탄생이 이루어진다고 판단한다. 비인간적인 것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계속 심해지는 기후 변화와 인공 지능, 기계의 발전, 금융위기 등을 고려할 때 내 얘기가 완전 비현실적인 얘기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성의 목소리 일 수도 있다.

당연히 윗집에서 열심히 장풍과 연금술을 연구하는 정신이 조금 안타까운 아이도 내 기호의 예외일 수는 없다. 나는 그 아이 덕분에 타노스를 존경하게 되었다. 오히려 지금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건 타노스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반성마저도 들 정도였다. 나한테 권력이 있다면, 지구 상에 인구 중에 45억 명 정도는 없애고 시작할 것이다. 뭐 그정도의 권력이 있다면.. 나는 그러한 교훈을 내 윗집 아이 덕분에 얻게 되었다. 히틀러와 레닌의 실수는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에 있지 않다. 그들의 실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서, 다른 사람들을 마구 강간한다든지, 마구 살인한다든지, 이 물건 저 물건 마구 훔친다든지, 길에서 계속 걸어다니면서 담배를 핀다든지,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를 왕따 시킨다든지, 층간 소음을 계속 일으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모두 기관총으로 쏴 죽이면 어떨까? 내가 봤을 때 그런 사람들을 지구별로 돌려보낼수록 인류는 더욱 번영하고 모두가 더욱 평화롭고 안정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다. 히틀러와 레닌의 잘못은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에 있다. 이런 면에서 <데스노트>의 라이토를 약간 정당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내게도 어제 약간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나는 어제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고개를 꺾고 의자를 늘이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한 순박한 아이가 내게 다가왔다. 마치 악어에게 순둥한 원숭이가 다가오는 것과 비슷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다가 악어가 원숭이 목을 무는 순간 바로 그 자리에서 끝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 아이의 한 마디는 "이거 여기 둬도 될까요?" 였다. 진짜 이상한 건 나의 반응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기계처럼 두어번 끄덕거렸다. 근데 내 안에는 뭔가 이 아이에 대한 알 수 없는 보호 본능,, 뭔가 도와주고 싶은 인간의 깊은 욕구가 숨어져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뭔가 힘 없는 아이의 순진무구한 그 말투와 태도를 접하자마자 뭔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뭔가 도와주고 싶은 그런...

지금도 내 윗집 아이는 미친 듯이 장풍과 현대 아파트의 내구성을 시험해주고 있다. 이 아이의 발전적인 실험 정신 덕분에 낮이고 밤이고 조용한 시간이 별로 없지만, 나는 오히려 감사함을 배웠다. 이 아이가 시끄러워서 감사하다는 건 아니다.

나는 내가 가진 게 무엇인지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은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이 아이가 있어서 나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한 번 더 깊이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내 안에 뭔가 알 수 없는 따뜻함이 있다는 것도.. 도서관에서 만난 그 아이 덕분에 배웠다.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위에서 열심히 지금도 일하는 정신이 살짝 안타까운 아이 덕분에 나는 모든 일에 적응할 수 있다는 자명한 진리를 다시금 배우게 되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