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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진리인가 아닌가 하는 물음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 그들의 삶과 관계있는가 아닌가하는 물음 앞에서 그들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은 꼭 복음이 거짓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현대에 와서) 그것에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거부한다. (중략) 그 분의 말씀은 진열장 안에 전시된 선사 시대의 화석이 아니라, 현대 세계를 위한 살아 있는 메시지다. 성경의 역사적 특정성과 현대 세계의 복잡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둘은 여전히 근본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중략) 하나님의 말씀에 열중한 나머지 세상을 직면하지 못할만큼 말씀으로 도피하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만큼 주위 세상(현대 사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복음을 살아내는 것은 이러한 이중 귀 기울임을 개발하는 것이다”
<복음>, 존 스토트
내가 과거에 다녔던 몇몇 개교회들은 이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곳이었다. 사회나 건물 교회 밖에서의 삶은 무시하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그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만 죽어라 찾고, 진정한 삶 따위는 나 몰라라 하고, 현대 사회는 존중하지 않으려 하거나 무시하면서 정작 더 웃긴건 그 기술들은 다 사용하는 (ex. 스마트폰) ,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그저 신앙적인 것만 신경 쓰는 권사님 혹은 집사님 그리고 머릿속에 든 건 성서 내용 밖에 없어서 다른 것들은 (심지어 일반계시조차) 그저 무시하려고만 하는 목사님과 신학생만을 위한 신앙의 형태들...
교회에 다니는 생물학 교수님이 있었다. (참고로 이 얘기는 실화다) 그가 교회에 몇 년 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담임목사가 이 생물학자랑 면담을 부탁하더니, 진화론에 대한 강의를 부탁했다고 한다. 근데 더 재밌는 건 이 강의를 통해 진화론이 틀렸다는 걸 보여달라는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현대 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지금 발전하고 있는 기술과 과학 문명은 말 그대로 현대 사회 전체를 이루는 근간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개교회는 이들과 그저 담을 쌓으려고 빠른 속도로 담을 쌓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들은 기술을 무서워하며 과학을 부정한다. 개중에 말로는 과학을 친구라고 생각한다 과학을 사랑한다면서 실제로는 그 기저에 과학을 부정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개교회에서 가장 권위적인 목사와 졷학적 리더들이 그러하다. 무지몽매한 목사들은 그저 자신들이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신앙적 왕국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이들은 그저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을 통제하고 컨트롤하고 싶어한다. 자기 말을 잘 듣는 교인은 착한 교인이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사람이고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매 맞을 교인이다. 루터는 교황청을 비판하면서 이들이 부패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이들의 권위주의로 보았다. 그리고 이 진단은 정확했다. 예수님은 왜 종교 지도자들을 비판하였을까? 왜 권위를 버렸을까? 하나님의 나라는 권위를 포기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개교회는 작은 중세 교황청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기술과 현대 문화와 완전히 담을 쌓아버린 개교회에 더 이상 청년들이 나갈 방도가 없다. 제대로 교육을 이수하고 정상적으로 공부하고 심지어 연구까지 하는 청년들은 개교회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문제는 이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배운 것을 알고 있는 것 뿐이니까. 배운 것, 알고 있는 것은 물리고 싶어도 물릴 방도가 없다. 이들의 머리가 자란 것이 아니라 정확한 지식을 깨달은 것 뿐이다. 그러나 개교회는 그저 이들을 정죄하기 바쁘다. 이들에게 이단의 심판을 내리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들이 머리가 자란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깨달아야한다는 개소리를 읊어대기 바쁘다. 정작 이 청년들이 알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에서만 해도 당연하게 배우는 말 그대로 과학 상식이다. 요새는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빠르면 유치원생만 해도 배우는 혹은 습득하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런 상식을 배우는 청년들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한다. 가장 빠르게 변하는 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어떠한 복음도 제시해주지 못한다.
청년들에게 어떠한 선택지가 존재하는가? 이들은 그저 삶에 충실하고 자신이 배운 바를 면밀히 연구하고 공부하였을 뿐이다.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청년들을 헛되게 정죄하고 현대 과학 문화와 헛되게 담을 쌓으려 하며 빠르게 변하고 있는 기술을 부정하고 그저 권위만 내세우는 목사와 신학적 리더들이다. 이들은 믿음을 먹는다. 먹어서 없애버린다. 이들은 노력을 부정한다. 아주 헛되다. 헛되고 너무나 헛되다. 진실로 성경에서 말한 무익한 종들 그 자체 아닌가!
이들의 무지와 권위주의가 개교회의 생명을 죽이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가장 큰 예수의 적이다.
그렇기에 많은 청년들은 믿고 싶어도 믿을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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