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한 이야기

인터넷 귀요미(Feat. 가망이 없어)

영웅*^%&$ 2019. 5. 2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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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인터넷에서 신기한 글을 목격했다. 나는 '가망이 없어'라고 번역하신 번역가 님 팬이라 가끔 그냥 뜬금없이 웃고싶을 때 그 번역가 님의 번역을 찾아보곤 한다. 그 번역가 님이 만든 트루갓효자 닉 퓨리랑 닥터스트레인지 '가망이 없어'는 정말 레전드라서 그냥 보는 순간 빵 터지고 엄청 웃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그 번역가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진심이다.) 매우 유쾌하게 번역해주셔서 웃을 수 있게 해주신 그 노고가 너무 고맙다. 덕분에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어벤져스 가망이 없어 no hope'가 되어버렸지만 뭐 어떤가 이런 레전드 번역은 처음 봤다고 영화를 직접 만드신 루소 형제마저도 폭소했으니 정말 우리 번역가 님은 최고 번역가유머 상이라도 받아야한다. 국격을 높여주신 분이다.

근데 더 웃긴 건 (비록 인피니티 워 때 쓰인 글이었지만) 인터넷에 자신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며 '가망이 없어'라는 번역이 괜찮지 않았느냐고 글을 올린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조금 어이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글을 쓴 사람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으니 영어는 제법 한다. 내가 봐도 이건 문제 없던데, 니들이 틀린 게 아냐?'이런 식의 어투로 글을 쓴 게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이런 의도가 없었다면 미국 대학 어쩌구 저쩌구 다 빼고 그냥 '가망이 없어' 번역 자체만 물어봤을 것이다. 미국 대학 어쩌구 저쩌구가 나온 순간부터 이미 이 글은 권위주의를 앞세운 글이 되는 거다. (권위주의라는 말이 좀 큰 단어로 느껴진다면, '깝친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다시 말해서 그 글은 얄팍한 형식에 기반한 깝치는 글이었다. 그래서 어이가 없었던 것이고.)

그리고 그 글 바로 밑에 아주 친절하고 똑똑하신 분이 endgame은 체스용어라 "we're in the endgame now"는 '가망이 없어'로 번역될 수 없다고 아주 친절하게 써주셨다. 바로 이런 분들 덕분에 인터넷이 무법지대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의 빛과 같은 분들이다.) 여러 썰과 비난, 무논리가 난무하는 인터넷 세상임에도 이렇게 지각 있는 분들이 있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팩트만 짚고넘어가자면, endgame은 체스용어가 맞으며 영화에서도 그런 의미로 쓰인 것이다.) 

정리해보자면, 이미 직접 영화를 만드신 루소 형제가 말한 것처럼 그 번역은 완벽한 오류일 뿐이고 설령 '해석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해석의 자유'는 영화적 사실에 기반해야하는 것이지, 영화적 사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영화 자체를 '가망이 없어'라고 완전히 뒤집어서 해석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혹은 (다양성을 위해 백 번 양보해서) 허용될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잘못된 번역은 분명히 인정해야하며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개선해나가려는 의지는 꼭 필요하다. 

나는 영화를 해석해내는 데에도 논리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논리적인 사고능력자만이 영화를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기본적인 논리적인 사고 능력도 없이 영화를 해석하는 건 영화에 대한 실례이다. 그것은 마치 5살 짜리가 운전을 해보겠다고 차를 몰고가는 일과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내 글이 약간 뒷북이라 미안하다. 최근에 엔드게임을 보면서 우연히 그 글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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