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사격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입소식과 총기나눔(?)이 있었다. 현장에서 내가 남긴 기록을 살펴보자.
'오늘은 입소식과 총기나눔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은 나에게도 잘 참는, 버티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되는 날이었다. 사람은 결국에 그 상황이 되면 그걸 견대어내고 적응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결국 죽음에까지 적응하는 게 사람 아닐까? 너무 시적인 표현일까?'
'오늘도 조금이지만 책을 읽었다. 비록 조금 수산스러운 상황이지만,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에서>를 도서관에서보다 깊이 읽고 있다. 예전에 이해 못 하고 넘어갔던 부분도 하나하나 꼼꼼히 읽고 있다. 수산스러운 곳에서도 충분히 독서하고 책을 읽을 수 있다.'
대충 이 때 이후에 총기교육과 총기제식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총기 분리 및 조립훈련도 했는데, 솔직히 썩 잘하진 못했다. 다만 내가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만족하고 넘어갔다. (그 후 자대배치를 받고나서도 총기 분리 및 조립을 했는데 그 때는 상당히 잘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으니 만족이다. 앞으로도 훈련의 연속이다. 군생활을 끝까지 잘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는 못하지만 설령, 근본적인 답을 모르더라도 순간에, 하루에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그냥 내 목표는 순간에,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훈련할 때는 훈련에 독서할 때는 독서에 체력, 사격할 때는 그거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나는 며칠이나마 이렇게 흐른 것에 신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에서>도 벌써 이 당시에 200페이지를 넘게 읽었다.
군필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교장'에 가서 훈련의 연속이었다. 사격이나 기본적인 훈련 PRI훈련 기타 등등 뭐 누구나 알고 누구나 서술한 내용에 대해서는 반복하지는 않겠다. 이미 인터넷에는 그런 글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다만, 나는 더 독특한 나만의 기록들, 느낀 점에 대해서 써보도록 하겠다. 나는 한창 사격을 하고 바쁜 훈련을 하는 와중에도 이런 기록들을 남기는 배포를 보였다.
'두려움이란 무엇일까?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사람은 왜 두려움을 느끼는걸까? 그리고 심지어 그 두려움 중 다수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정되지 않는가? 도대체 그러면 왜 두려워한단 말인가? 나는 언제 두려움을 느끼고 언제는 느끼지 않는 걸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삶인가? 감정도 가치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떤 삶인가? Logical Thinking Machine으로 살고 싶다.'
군대나 훈련소 따위에 있다고 Machine으로 살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 전에도 나는 Logical Thinking Machine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하다. 지금도 나는 논리적인 사색가이자 Logical Thinking Machine으로 살아가고 있다. 다만, 태어나서 처음 사격을 하는 상황을 눈 앞에 두고도 이런 걸 생각하고 있는 건 지극히 나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상해보라. 알다시피 사격훈련을 하기 전에 땅에 눕거나 영점사격을 하거나 총기자세훈련을 계속하거나 기타 등등 그런 상황의 반복이다. 다들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자세를 잘 잡고있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깔끔한 자세로 정직히 수행하는 훈련병 한 명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혼자 이런 논리적인 사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있었다.
사람의 인생은 의미없다.(결론)
인생은 결국 끝이 난다.(소전제)
끝이 난다면 의미는 없다.(대전제)
그러면서 나는 이 대전제를 반박하는 상상을 제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어둠 속에서 양초를 태워서 불을 밝혔다치자 양초가 결국 꺼진다면 그 양초는 의미가 없는가? 영화가 2시간동안 상연되고 결국엔 '끝이 난다면' 그 영화는 의미가 없는가? 이건 지속성과 주체에 대한 관계를 오해한 결과인가?
-아마도 객관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사람한테는 이런 생각 자체가 '자아분열이 아닌가' 하는 오해가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들은 아마 알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어떤 생각에 대해서 최대한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여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결국엔, 이런 생각들에 대해서 내가 뭐 거대한 깨달음을 얻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는 과정 자체가 내게는 중요했고 충분했다.
뭐 이러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사격을 나름 성실하게 잘 수행했다. 딱히 어려울 건 없었다. 사격이 끝나고 나자 어느새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에서>도 다 읽었고 나는 <백범일지>를 꺼내 읽고 있었다. 백범일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홀로 우뚝 솟아 넓은 도량을 펼치고, 천하를 걸어감에 누가 나를 따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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