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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훈련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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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면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다 (베벌리 실즈) 

 

내가 훈련소에서 쓴 일기 첫 부분을 보면 가장 먼저 이런 기록이 나온다. 

'오늘에서야 (훈련소에 들어가고난 뒤 5일이었다) 생활이 전반적으로 안정되어 일기 쓸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바쁜 훈련병에게 주말은 가뭄에 단비같은 존재이다. 원래 수첩을 사려고 했는데 군대에서 친절하게 이렇게 공책까지 주시니 굳이 수첩을 많이 구매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PX에서 수첩이나 노트 등은 충분히 구매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그 다음 이어지는 문장은 이러하다. 

'군대 생활 특히 훈련소 생활에 가장 힘을 주는 존재는 옆에 있는 동기들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오더라도 나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 동기들과 함께 한다니 많은 용기가 생긴다.' 이 말은 자대생활가서도 군대 생활 내내 계속해서 경험으로 증명된 옳은 문장이 되었다. 물론, 같은 중대 내애서 동기가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ㅎㅎ 나는 좋은 동기들이 꽤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뭐 아무튼 이 때는 한창 제식을 배우고 아침에 일어나면 몇 km씩 달리기 하고 계속 체력단련을 하던 시기였다. (아마 모든 훈련소가 첫 주는 사회의 물을 뺀다면서 이런 방식을 택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군대 시간표에 맞춰서 훈련병들의 몸을 단련시키고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제식을 맞춰나간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야 웃어 넘기겠지만 이게 막상 제식을 당하면 진짜 미칠 노릇이다 ㅋㅋㅋ (지금이야 나도 그냥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ㅋㅋㅋ)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밥 먹으로 갈 때도, 교육 받으러 갈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ㅋㅋㅋ 어딜 가든 제식을 딱딱 맞춰서 거의 기계마냥 군기를 딱딱 보여줘야하니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이렇게 한창 제식을 배우고 기본 체력을 키우고 생활을 맞추어 가면서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고 어려운 멘사문제를 풀었다. 요새는 국방일보에도 멘사문제가 중간에 껴있어서 멘사문제를 구하는데 어려울 건 없었다. 그리고 책은 조교들의 허락을 받아 부대 내에 있는 책들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훈련소에서는 진짜 시간을 많이 안준다. 사회랑 자대랑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훈련소에서만 9권의 책을 읽었다. (군필자라면, 이 9권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몸으론 제식을 칼같이 맞추고, 불침번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경계하면서, 생활을 딱딱 맞추고, 복명복창을 하면서도 나는 머릿속으로 어려운 문제나 난제를 풀곤 했다. 그렇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특히, 새벽에 아주 고요한 불침번 시간 때 나는 엄청나게 깊은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체력을 무섭게 단련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첫 번째는 체력이고 두 번째는 멘탈이라고 생각했기에 체력을 단련시켜나갔다. 다행히, 입대 하기 전에 대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왕복하곤 했기 때문에 하체나 체력은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단련한 체력은 훈련소에서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지구력과 오래달리기를 엄청 잘했다. 맨 처음 내가 훈련소에서 체력 검사를 했을 때, 팔굽혀펴기 29개 + 윗몸일으키기 28개 했다. (비웃어도 좋다 ㅎㅎ) 그 다음 다시 체력 검사를 했을 때, 팔굽혀펴기 32개 + 윗몸일으키기 44개를 했고 일병 때 체력검사를 했을 때 팔굽혀펴기 68개 + 윗몸일으키기 73개를 했다. 그리고 상병 때 팔굽혀펴기 82개 + 윗몸일으키기 90개를 했다.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입대할 때만 해도 체력 면에서 좋은 건 지구력밖에 없었다. 윗몸일으키기랑 팔굽혀펴기는 너무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군생활 내내 체력 면에서는 지독하게 노력했다. 마지막 기록도 가라를 전혀 안 치고 FM으로만 해서 저 기록이었지 가라를 살짝만 쳤으면 더 많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ㅎㅎ 어쨋든, 기록도 기록이지만 개인적으로 체력이 많은 발전을 했기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발전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기르면서 얻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어쨋든 이 주에는 이렇게 체력을 기르면서 제식을 배우고 육군도수체조도 배웠는데, 처음에는 정말 '뭐 이런 동작이 다 있나 이걸 다 배울 수 있는건가'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의미없는 상념이었다. 병장 때에는 일어난 지 2분도 안 되어서 무의식 상태로도 육군도수체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별다른 걸 안 했음에도 굉장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오히려 예전 훈련소 동기들은 이 때가 아무것도 안 해서 시간이 가장 안 갔었다고 하던데 ㅎㅎㅎ 나는 꽤 바빠서 그랬는지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혼자서 어려운 문제도 풀고했으니 시간이 빨리 지나갈 만 하다 ㅎㅎ 아 그리고 어려운 문제를 풀 때 풀었다는 쾌감도 느낄 수 있고 자기효능감도 계속 얻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감사했다.) 

이 주에 나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솔직히 모른다. 그래도 도망치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볼 것이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이런 주석이 달려있다. "내게는 충분히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그 때쯤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느끼고 있었던 거 같다. 진짜 훈련이 시작되었다.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겠다' 이 때부터 내 군생활 전체를 관통하는 모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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