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지
'무지하면서 믿는' 입장과 '무지하면서 믿지 않는' 입장 총 두 가지가 있는데, 나는 전자의 입장이었다. '무지한 상태로 믿든, 안 믿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면 종교, 자아, 인생, 정체성, 전체적인 면 등의 단계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정확하다. 다시 말해서 이런 사람들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합리적인 자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무지하고 영유아 같은 자들이다.
2 맹목적인 믿음
나 역시 무지를 지나서 맹목적 믿음을 통과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리 천재이든, 어느 쪽 입장이든 사람인 이상 1,2단계는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믿음은 사다리 같은 믿음으로 개인이나 인류 전체나 결국엔 초월해야 마땅한 단계이다. 맹목적 믿음보다는 그나마 '안 믿음'이 선입견이나 편견 면에서는 조금 더 낫지만 솔직히 거기서 거기다. 어쨋든 절대주의 근본주의가 팽배한 한국 개독교 계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교인이 바로 이 2번 단계 믿음을 가진 멍청이들이다. 한국 개독교를 믿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1,2번 수준의 자들이다. (안타깝다 불쌍한 자들.. 불쌍한 무지몽매한 이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자들...)
3 정수
2번 단계를 지나서 복음의 정서, 말씀의 정수 등에 도달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영안이 열린 자들이 아니라 그냥 영리한 자들일 뿐이다.(무신론 쪽이라면 샘 해리스,도스토예프스키, 버트런드 러셀 같은 사람의 책을 읽고 과학, 생물, 경제 등의 핵심논리를 통찰한 이들이 바로 3번 단계이다. 샘 해리스,도스토예프스키,버트런드 러셀은 예시일 뿐 여기엔 지성이 있는 다른 누군가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 2번에 더해서 영리함을 가진 이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3번 단계에 도달하는데 백 명 중 2명이 될까말까하다. 나는 2번을 지나 3번 단계에까지 가는데 몇 개월 정도 걸렸다.(정수는 단순히 신학적 지식을 뜻하지 않는다. 본질에 대한 통찰력과 이해력을 뜻한다.) 내 경험으로는 3번 단계에 도달했을 때부터 한국 목사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아니면 특별히 내가 만났던 개독교 사람들만 그랬던 건지도? 어쨋든 확실한 건 역사가 증명하고 니체가 지적했듯이 개독교 기득권자들은 '믿는' 자들이 3 이상의 단계로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민중들이 우매하기를 바랐고 2번 단계 이하에 머무르기를 바랐다.)
4 다양성
내 생각에 이 단계는 그 사람의 기질에 따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즉 머리가 좋아도 폐쇄적인 마인드에 갇힌 사람은 이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다. 나는 운으로 이 단계에 진입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해온 다양한 독서와 다양한 경험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5 의심
믿는 사람들 중에서 용기 있는 사람들만이 이 영역에 도달할 수 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단계에 도달하는 이들이 있다. 이 단계의 의미는 '신의 존재'나 '특정 종교'를 의심한다는 게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던 사상과 가치체계'를 의심해보고 모든 걸 공정히 판단해보겠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용기있게 기꺼이 이 단계에 뛰어들어 내가 기존에 무비판적으로 믿었던 사상과 체계를 객관적으로 성찰해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았다. 내 일기에는 '믿지 않아 보겠다'라고 어렸을 때 쓴 기록도 있다. 나는 의심해보고 싶었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해보고,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은 적중했다. 내 용기 덕분인지 나는 6단계로 껑충 뛰어넘을 수 있었다.
6 초월 evocative reading (life)
이 초월 단계는 현재 내가 아는 인간의 종교, 신앙의 가장 높은 단계로 1억 명 중에 10명 정도?가 도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이들은 이 경지를 깨닫지도 못한다.) 나는 5단계를 넘어 6단계까지 갈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사람이거나 성인인 것은 결코 결코 아니다.(물론, 그렇다고 내가 평범하기만 한 사람도 아니다. 나는 그냥 나이다.) 내 생각습관, 독서 방식, 객관적인 독법, 논리적인 이해, 통찰력 등이 주요했던 것 같다. 나는 1~6단계를 돌파해서 최종적인 단계에 도달하는데 딱 5년 걸렸다. 6단계에 도달한 이들은 2,3단계와는 다르게 삶이 자연스러워진다. 진정으로 깨달았기에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종교든 무종교든 아무런 상관이 없고 스토리든 교훈이든 환기식으로 evocative 읽는 것이 가능해진다. 종교의 본질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함부로 틀렸다고 정죄하지도 않게 된다. 이것과 저것이 다름을 알게될 뿐이다. 삶은 자연히 따라오고 아하! 하는 깨달음은 증진된다.
이 글은 어디서 인용한 글도 아니고 그냥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종교적 단계를 쓴 글일 뿐이다. 순수히 100% 내가 쓴 글이다. 내가 6단계까지 왔다고 해서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나는 나일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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