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살아가기위해서 어느정도 불신자가 되어야 하고 죽기위해서 어느 정도 신자가 되어야한다. 대단한 통찰력을 담은 나 자신의 인용구이다. 니체가 기독교의 밑에, 가장 근원에 데카당스가 있다고 했을 때 그의 말은 진실된 말이었다. 가장 정확히 기독교를 통찰한 말이었다. 흔히 믿는다는 자들의 간증 그 중에서도 돈 많이 벌고 좋은 위치까지 올라간 자들의 간증을 보면, 그들이 순전해보이는 기독교를 말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기복신앙을 말하고 있는 것 뿐이고 자신들의 소원을 신에게 대입시켜 간절히 기도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얻은 것에 불과하다. 기독교 중에서도 순수 기독교에 기대서 살 수 있는 자는 없다. 냄새 나는 자 중에 가장 큰 악취를 풍기며 오직 거짓된 허위로 덮어버리는 신학자나 패스츄리 같은 자들만 순수기독교에 말과 글로만 기생하여 그들의 생계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말과 글을 자신의 삶과 분리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살아가기위해서 어느 정도 불신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죽는다. 인간이 죽으면서 그가 가지고 있었던 희망, 소망, 경험 등 모든 것들이 주체인 그에겐 사라진다. 무無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무nothing를 극복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신앙밖에 없는 것이다. 죽음보다 더한 (-)이기에 그 죽음 자체마저도 극복하는 것이다. 다시 반복하자. '인간은 살아가기위해서 어느정도 불신자가 되어야 하고 죽기위해서 어느정도 신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깊이있는 상태는 유신론과 무신론을 동시에 끌어안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 관해서 어느 쪽을 택하든 '무조건' 믿는 자는 순진하다. 둘 다 못 받아들이겠다는 불가지론자는 용기가 없다. 가장 적절한 건, 가장 적절한 상태는 둘 다 옳은 상태이다. (통찰력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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