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꽤 똑똑한 여자와 대화를 나눈다 치자
그 여자는 화를 내며 "신약 성경은 모순투성이야. 예수란 인간이 실제로 뭘 했는지도 모르잖아. 다 구전된 거라고. 하나님 나라가 올 거라 꽥꽥거리던 예수의 단순한 가르침을 사도 바울이 죄와 심판과 대속이란 복잡한 신학으로 바꿔놓은거야. 신약 성경은 여성차별적이고 동성애를 핍박하고 면죄부, 십자군, 종교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데도 이용됐어! 신약성경은 끔찍한 책이야!"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러분의 대답을 1page로 요약하여 설명해보라.
"음 너 말이 맞아, 신약성경은 그런 책이야. 더 나아가서 구약도 끔찍하기 짝이 없지. 여자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살인하고 강간하고 전부 다 물에 빠뜨려 죽이고(노아) 야훼라는 놈은 전지전능하다면서 피조물한테 선악과나 만들어놓고 아브람이나 골탕먹이고 교만한데다 신경질적이고 자기가 애굽에서 건져놓은 놈들을 마구 패대기치지. 제멋대로인데다가 무능하기까지 해. 그래 너 말이 맞아. 더 나아가서 예언이라는 것도 죄다 짜집기에 부활이나 기적은 왜곡이 틀림 없어. 그러나 딱 한 가지만 차원을 더 높여서 얘기한다면, evocative reading이라는 것이 있어. 누군가 이렇게 얘기했거든 '상징은 천만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그 다양한 뜻을 비추어서 읽어내고 스스로 뜻을 창출하면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성서가 그렇게 읽어야 되는 책이라고 생각해. 즉, 어떤 방식으로 읽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배울만한 점, 창의적인 가르침도 발견할 수 있어. 예를 들어 달라고? 예를 들면 이런거야. 성서를 단순히 써있는 그대로 읽으면 여자를 핍박하거나 노예제도를 찬성하거나 전쟁을 찬미하게 되겠지. 그러나 그런 부분에 잡히지 않고 넘어가게 된다면, 가리지 않고 응용할 수 있게 돼. 에베소서에 보면 안테암불로로 살아가라는 얘기가 있어 마가복음에도 있지. 이런 얘기는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 상황에 맞추어 적용될 수 있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함께 한다는 것이나 자비, 용서 등에 대한 가르침 역시 그렇지. 생각이나 깨달음 역시 마찬가지라 볼 수 있어. 남을 번영케 함으로써 자신을 번영케 하라는 전도서 얘기도 그렇지. 그걸 단순히 문자 그대로만 보지 않고 evocative하게 뜻을 창출하면서 문맥에 응용해서 적용할 수 있으면 나름 발전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 성서만 이런 건 아니야. 고대 이야기, 구전, 신화 등 이와 비슷한 서술 방식을 택한 것들은 모두 뜻을 창출하면서 읽어야 그 의미가 있어. 창출하지 않고 단순히 문자만 본다면 대부분 헛소리로 끝나게 되지. 뜻을 창출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문학, 이야기, 연극 등이 나와 무슨 관련이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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