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날개

영웅 (5)

영웅*^%&$ 2021. 4. 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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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와 그의 약혼자와 나는 파리의 근사한 식당으로 가서 몇 시간을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이 여자를 만나고 새롭게 태어난 듯 했다. 이전의 자기 자신을 잊은 듯한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진짜 사랑이라고나 할까? 남자에게는 정말 가끔씩 그런 여자가 나타나고는 한다. 만나고 있을 때만큼은 뭔가 남자로 하여금 깨끗해지는 느낌을 주는 여자가 있다. 아마도 그가 드디어 이런 여자를 만난 것이리라. 나는 그의 예전 모습도 좋아했지만, 지금 이런 모습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가 도덕적 허영에 사로잡혀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얼마 안 가 깨질 마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의 사랑을 응원하였다.

그는 밤에 여자를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준 뒤 내 방에 와인을 들고 와 한 잔 하며 말했다. 우리의 눈 앞에는 차분하며 아름다운 파리의 시내가 펼쳐져 있었다.

“그녀를 바라본 순간부터 내 여자라는 걸 알았지. 그녀의 침묵도, 그녀의 눈동자도 전부 나의 것이었다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게 말을 걸었네. 내게 걸어오지도 않았으면서 어느새 내 마음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지. 그녀는 마치 내 어린 시절, 내가 가지고 있던 순수한 추억들 그리고 심지어 나의 미래와 그녀와 함께하는 행복한 순간들마저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다네. 그녀를 처음으로 바라보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가 내 모든 걸 관통한 듯한 느낌을 느꼈다네.

나는 항상 노르망디 바다를 사랑해왔다네. 근데 그녀를 보는 순간, 새로운 바다에 깊이 빠져드는 기분을 느꼈어. 너무 행복했지. 무한의 세계를 열고 들어간 행복감에 빠져 매일 수영을 했어.”

그는 파리 시내를 잔잔히 바라보면서 내게 이렇게 몇 번이고 고백하곤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고해성사 같은 고백을 들었다. 각자에게 의미가 되는 순간이 있고, 각자에게 의미가 되는 사람이 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천천히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 발버둥치듯이 살아간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정말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고 행복한 순간은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고 이런저런 인생의 경험들이 쌓이다보면, 우리에게 삶은 점점 잠식되어가는 죽음 혹은 발버둥으로 다가오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삶이라 하더라도 주변에 따뜻하게 안아줄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인생의 의미는 충분한 것이다. 이전의 나도 성취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나 파리에 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잔잔히 고백하는 그의 말들이 허언처럼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해서 안을 수 없다면, 도대체 인생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우리가 수많은 작품을 쓰고 인정을 받고 많은 돈을 벌어도 정말 인생에서 중요한 건 항상 가까이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하였으나 쓰인 플롯은 실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역사적 진실을 이해하고 싶으신 분은 제 2차세계대전 홀로코스트에 관해서 직접 자료를 찾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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