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과생이고 지금 전공하고 있는 컴퓨터나 다니고 있는 대학원 역시 모두 이과이다. 그러나 책만큼은 워낙 어릴 때부터 사랑해왔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도서관에 있는 거의 모든 책들을 (좋은 책들만) 읽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 수준이 높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정진해야할 바가 많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친구랑 대화하면서 참 놀라운 일을 겪었다. 그 친구는 서울시립대 학생인데 그 학교 문과탑으로 들어갈만큼 공부를 웬만큼 하는 친구였다.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를 all 1등급으로 따내던 친구였다.
대화를 한창하다가 사마천의 사기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내가 <사기>를 인용하면서 한참을 이리저리 논지를 펼치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사기'가 뭔지를 나한테 물었다. 책이라고 하니까 사기치는 법에 관한 책인지 나한테 다시 물어보더라. 흐음, 처음에는 농담인가 싶었는데 그 친구를 자세히 보니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
그 때는 별로 티를 안 냈지만 솔직히 나는 실망했다. 우리나라 독서 수준이 낮다는 건 이미 알고있었지만, 진짜 '이 정도로 낮았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딜가든지 토론할만한 수준이 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참 힘들긴 하다. 그러면서 꼭 그 친구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학 가기 전까지는 입시공부, 대학에 가서는 스펙 쌓기, 직장에 가서는 일에만 치여서 살아가는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나마 직정이라도 잡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은 형편이라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수많은 대학생들한테 스펙 쌓기 아니면 <문사철>같은 멍청한 선택지밖에 없는 형편을 누구 탓을 하겠는가. 그 친구 잘못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 날의 대화도 얼렁뚱땅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한국 젊은이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그리고 나는 얼마나 큰 운을 타고났는지 동시에 느꼈다. 그 친구에게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오직 스스로 깨달아야만 변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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