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갈등의 이유에 대해서 적었다. 이거 말고도 나는 말도 안 되는 몇 가지 인격 모독도 겪었다. 그거에 대해서 얘기해봤자, 너무 개인적이라 와닿지 않을 것이니 얘기하지 않도록 하겠다.
아무튼 덕분에 나는 평소보다 무신론자들의 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러셀, 볼테르, 도킨스, 히친스, 니체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의 책을 다시 읽었다.
그러나 여러 경험들과 지식 등은 내 신앙까지 완전히 죽이지는 못했다. 니체의 표현대로라면, 신앙의 용은 몇 번이고 되살아났다. '신은 죽었다' 생각할 때쯤 어느새 내 곁에서 나를 돌돌 말아 쌈 싸먹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경험 등과 지식 등이 있었지만, 여기서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걸 하나하나 다 설명하다보면 글이 너무 난잡해진다)
결정적으로 나를 무신론으로 이끌었던 건 박격포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공감도 안 되겠지만 나는 박격포 훈련에 처음 참여해서(제대로 된 훈련) 엄청난 폭탄들을 직접 쏜 그 순간 무신론자가 되었다. 이걸 글로 읽는 건 정말 전혀 공감이 안 될 것이라 설명하긴 어렵다. 그래도 어쨋든 글로 표현해보자. 처음으로 폭탄을 만지고 그 차가움과 냉혹함을 느끼고 무시 당하고 폭탄을 장착해서 쏘고 많은 불발이 나고 수십 개를 쏘고 또 쏘고 새벽까지 일주일 내내 훈련하면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삶의 냉혹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되었다. 그 때 확실히 느꼈다. 무언가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내 안에 무언가가 죽었다는 것을
그러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도 나는 고통이 뭔지 잘 알았고 심지어 지옥도 졸업한 적이 있었다(이 문장은 문학적인 표현도 아니고, 상상으로 지옥에 갔다는 뜻도 아니다) 그런데 이 경험은 그것과는 정말 많이 달랐다. 여기서 박격포를 얘기했지만, 정말 인생에서 고생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박격포 말고 다른 개인적인 걸 대입시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고생을 해보면서, 인류가 수많은 고통에 차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구 어디를 둘러보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고통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태계 혹은 생물 전체로 확장해도 분명히 그런 것처럼 보인다. 고통은 실존한다. 고통은 실제이다.
신은 사랑이시고(피조물을 사랑하신다) 지혜로우시며 전능하시다.
그런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는데도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
->따라서 신은 피조물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거나(사랑이 아니거나) 고통을 피하게 해줄 만큼 지혜롭지 못하거나 전능하지 못한 것이다 (혹은 여러 조건 중복 충족) 왜냐하면 신이 정말 사랑이셔서 피조물을 온전히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지혜로 완전히 표현할 수 있으며 온전히 전능하다면 그 신이 창조한 세계는 피조물에게는 기쁨과 즐거움 사랑 등으로 가득차 있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도 말했듯이 고통은 실존한다)
이것이 니체의 트릴레마이다. 이 질문은 CS루이스나 자비 재커라이어스가 답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을만큼 상당히 수준 높은 문제이다.
나는 내가 직접 큰 고통을 느끼고 나서야 이 질문에 마주하게 되었다. 나 자신도 많은 고통을 느끼고 수많은 사람들도 고통을 느끼는 이 세계 속에서 신은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그 당시에 내게는 이 질문은 답하기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고 정직하게 나는 신이 없다고 인정했다.
요약 1) 내게 신이라는 존재를 부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박격포였다
2) 그건 (단순한 박격포가 아닌) 니체의 트릴레마였다. "이렇게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신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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