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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

무례한 개독교 -1 착각의 늪 (feat. 스토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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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험은 개인의 경험으로 각기 내용이 상이할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아래에 나와있는 경험은 최대한 사실에 기반하여 적혀있으며 필자 본인의 경험에 의거하여 적었습니다. 
이 글은 어떠한 비난과 비판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 개독교의 현상을 바라보고 
도대체 이들이 왜 이렇게 하는지 조금이나마 파악해보고자 하여 적게 되었습니다. 

어제 제 친할머니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잘 보내드리고 잠시 시간을 내서 쉬고 있을 때 
제 삼촌 멀천트가 장례식장에 왔습니다. 미리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저는 과거에 멀천트 덕분에 신앙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멀천트는 개척교회 목사이고 이 분 성격과 발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멀천트는 어떻게 하면 상처를 더 깊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게 아닐지 의심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당연히 저 역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시기 덕분에 정말로 정직하게 신앙에 회의적이게 되었고 깊은 의심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도대체 신앙의 열매라는게 이렇게나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아프게 하고 말로만 떠드는 것이라면.. 이 열매가 정말 이 정도가 다라면 도대체 이 신앙이 뭐가 진짜라는거지?' 저는 그렇게 생각했었고 제 논리 자체는 충분히 타당한 논리였습니다. 멀천트는 권위주의와 무지성주의에 매달려 성도들을 저격하는 설교를 했고 심지어 어떤 설교는 아주 영광스럽게도 저를 저격하기 위해 쓰이기도 했습니다. 놀랍죠?  
더 놀라운 건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멀천트는 저한테도 굉장히 많은 상처를 주었음에도 딱히 기억조차 못하는 듯 했습니다. 물론, 저는 지난 과거에 얽매이는 성격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난 과거를 있는 그대로 흘려보내려고 하죠. 그러나 멀천트는 자꾸 지난 과거에 얽매여 있는 듯 했습니다. 멀천트는 장례식장에 와서도 저랑 자존심 대결을 펼치려 했습니다 ! 이게 저는 굉장히 놀라운 부분이고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왜 멀천트가 그랬을까? 하면 이에 대한 대답은 매우 간명합니다. 멀천트는 저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더불어, 멀천트는 이상한 신학을 가지고 있어서 메타인지가 매우 떨어집니다. 매우 즉자적인 사람이죠. 자신을 제 3자로 객관화해서 볼 수 없기 때문에 자꾸 이상한 데 매달려 있습니다. 아무튼, 멀천트는 장례식장에 와서까지 저를 이기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저는 겨우 멀천트 따위한테 이기려고 제 길을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쨋든 멀천트의 자존심 발악은 정말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아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굳이 사람이 죽은 장례식장에 까지 와서 자존심 대결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새 스토킹이라는 것이 많이 공론화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멀천트는 저를 스토킹하고 있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얘기할 수 있나면, 계속 저한테 전화하려고 하고 제가 차단해놓으니 제 엄마한테까지 전화를 해서 저를 바꿔달라고 하고 심지어 이렇게 장례식장까지 와서 저랑 자존심 대결을 펼치려 하니까요. 아 이 얼마나 대단한 ego 와 삐뚤어진 자아상입니까. 
저는 장례식장이 끝난 뒤에 집에 와서 그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인인 것처럼 굴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멀천트가 보여준 정확히 은혜와 반대되는 행동 덕분에 다시금 신앙에 작은 회의감마저 느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좀 더 일반적인 차원에서 볼 때, 개독교가 이런 식의 무례함을 가지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함을 느끼게 됩니다. 교회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신앙의 목적이 과연 무엇일까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건물 교회 안에 모아서 그들의 머리를 비워내고 아무 생각도 못하는 저능아로 만든 다음에 이렇게 대단한 ego 와 삐뚤어진 자아상을 주입하는 것이 과연 신앙이고 교회일까요? 
저는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왜 주님이 그렇게까지 종교인들을 비난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성서 전체를 볼 때, 예수님께서 비판한 존재는 그 당시에 가장 뛰어난 종교인들 외에는 없습니다. 흔히 치가 떨릴 정도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주님 앞에서 용서함을 받거나 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실제 있었던 역사가 아니라 할 지라도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비판하고 죄인들을 가까이 하신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입니다. 주님은 비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회칠한 무덤'같다고 하신 것은 비단 그 당시에 바리새인들만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일부' 목사 혹은 신학자 등도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웃거나 천사의 모습을 가장합니다. 그러나 그 내면은 모두 악마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중성은 너무나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까지 내면이 분리된 존재를 볼 때 우리는 평안을 느끼지 못합니다. 제가 어제 멀천트를 보면서도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 사람안에는 완벽히 분리된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서로가 분리되어 닿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사람 안에는 존재하며 이는 '회칠한 무덤'처럼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종교인들을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나는 제사보다 자비를 원한다'고 말씀하신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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