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역하고 나서 그리스도교에 다시 관심이라도 가져보게된 시점은 오강남 씨의 <예수는 없다>와 볼테르의 <광신의 무덤>을 읽고난 이후였다.
니체의 <안티크리스트>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바트 어만의 책들 그리고 고고학적인 증거 등을 검토해보면서 나는 신은 확실히 죽었고 성서는 개소리이며 제발 내 인생에서 개독교가 사라지도록 기도했다
그 후 나는 몇 개월 간 해킹에 파묻혀 지냈다.
덕분에 지금은 실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긴 뭐하지만, 드림핵이나 여타 다른 곳에서 내 순위는 높은 편이다. 그에 걸맞게 매일 더 정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어릴 때 습관 그대로 수많은 책들을 여전히 읽었다. 지금 20대 중반에 읽은 책들이 거의 만 권에 육박할 정도이다.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를 읽으면서 나는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고 느꼈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붕괴했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 내게는 3가지 선택지만이 남았다고 느꼈다. 1 복음주의 2 초월주의 3 무신론
(2)번 글에도 얘기했듯이 나는 트릴레마를 깨닫고 느낀 후에 본질적으로 무신론자로 살았다. 내게 가장 중요했던 건 지적인 카타르시스였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있었다. 푸코, 사르트르, 니체, 오스카 와일드 등 안 읽은 책이 없었던 나는 무신론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강남 교수의 책이 그 난점을 너무나 쉽고 가볍게 해결해주었다.
앞에서 얘기했던 트릴레마에 관한 부분부터 성서에 나오는 오류와 모순, 고고학적인 발견과 과학적 탐구 개독교 신앙의 문제점 등
모든 어려움들이 너무나 시원하고 명쾌하게 해결되었다. 나는 신앙 속에서 처음으로 자유하다고 느꼈고 이것이 예수가 얘기한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와 같은 의미라고 생각했다.
왜 성서에도 공룡 이야기가 없는지 간명히 알 수 있었다.
극도(?)의 무신론자들이 실망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그리스도교가 이성적인 면에서 정당한 논거를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정직하게 생각해 보았을 때 그리스도교는 적당히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 (크레이그, 재커라이어스, 플랜팅카, 라이프니츠, 괴델 등의 논증을 직접 참고해보라) 그리고 동시에 정직하고 학식이 깊은 무신론자들이 왜 기독교를 믿지 않는지 그 이유와 논거도 역시 알고 있다.
정당한 이성적 근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1)번 글에서 얘기한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정말 여러 번 노력하고 기도하고 교회에도 나가보았지만 신앙은 생기지 않았다.
나는 예전의 믿음을 가질 수 없었다.
예수의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탄생부터 정말 큰 차이점과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일단 가장 큰 차이인 연대의 차이가 있고 족보의 차이가 있다. 또한 누가 찾아왔는지 어디서 탄생했는지 어디로 대피했는지 무슨 일등이 있었는지도 역시 명백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정말 되돌이킬 수 없는 모순과 차이는 복음서와 성서에 많이 나온다. 이는 이 모든 게 있는 그대로 역사적 사실일 수는 없다는 가장 큰 증거이다. 더 많은 내용은 바트 어만의 책을 참고해보기를 바란다. 나는 이 진실에 대해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이 1)무지 혹은 2) 통합된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사실 이런 내용을 직접 찾아보고 비교 검토하는 일반 신자는 별로 없다. 애초에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어본 사람도 별로 없다. 그나마 꼼꼼하게 읽어본 사람들 중에 정직한 학자들은 이런 모순과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모순과 차이점이 있어도 통합된 이야기는 진실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서, 부활 사건을 설명하는 디테일은 복음서마다 각기 다르지만 결국 핵심 이야기인 부활은 진실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이야기 형태로 전해져 내려온 것은 모두가 짜고 치거나 베끼는 것이 아닌 한 여러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니발 이야기나 알렉산드로스 대왕 등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보수주의 그리스도교 학자 등은 이런 논거를 주로 제시한다.
나름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나도 오히려 그리스도교가 있는 그대로 진실이었으면 좋겠다. 어쨋든 나는 성서 무오설에는 찬성하지 않기에 성서에 나오는 얘기가 진리일 거라고 온전히 믿기는 조금 힘들었다. 결국 명백한 차이가 있고 2천 년 전 증언이라면 온전히 믿고 안 믿고는 각 개인에게 달려있는 일 아니겠는가?
단순히 믿음으로 믿으라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근거가 더 있으면 좋겠지만 모든 근거를 마음을 열고 검토해보아도 '적당한 근거' 밖에 없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사상 혹은 삶의 차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주님을 보수적인 혹은 복음주의적 차원에서 믿는 것은 주변 사람들을 혹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요한 1서나 요한 복음이 이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개독교 경험은 기독교 반증의 가장 큰 이유였다
아무튼 나는 고고학적인 사실과 과학적 논증부터 하나씩 검토했고 그리스도교가 사실에 기반하지 않다고 인정하게 되었다(적어도 그런 부분이 있다)
나는 예수를 믿는 객관적인 증거도 알고 기독교를 무시하는 객관적인 증거도 안다.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했고 나는 정말 진실되게 각자의 타당성을 모두 배우게 되었다. 너무 당연한 얘기이지만, 예수를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다.
다만, 내가 믿었던 근거는
1) 초월적이고 비물질적인 근원과 2) 지적인 설계 3) 예수의 부활 등이었다(가장 기본적인 논증이다). 볼테르 같이 정말 순수하고 거의 완전에 가깝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완벽성만을 요구한다면, (내가 느끼기에는) 그리스도교는 던지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건 성서를 인간이 직접 썼고 그 후에도 인간들이 살아왔다는 것을(그게 역사다) 모르고 하는 얘기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어떤 일을 하든지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또한 완벽하고 순수한 이성만이 진리로 가는 길인지 아는 사람 역시 없다. 왜냐하면 완벽하고 순수한 이성만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예수를 믿고 있는 정직한 학자들이 제시하는 이유를 안다. 뛰어난 무신론자들의 글을 거의 다 읽었고 그들이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이유도 안다. 그리고 그 중에 분명히 타당한 논거도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든 연구로는 대부분의 정직한 학자들이 인정할만한 '굉장히 명징한 부분 crystal clear'이 그리스도교에 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수많은 난점이 있다는 것도 분명한 진실이다.
더 중요한 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맺는 열매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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