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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생각이 다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에 대하여 각 개인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창세기 등 성경의 많은 부분이 구전이라는 건 명백합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 사건이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나온 아들을 '셋'이라고 불렀습니다. 성서에 따르면, 셋을 낳았을 때 아담의 나이는 백 삼십세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낳고도 무려 수십 년 동안 자식이 없거나 딸만 나았다는 설명은 당연히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담과 이브에 대해서는 '에덴 동산에 오랫동안 있었고 쫓겨난 뒤에 자식을 낳아서 그런 것이 아니냐?'라고 근본주의자는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합당한 설명은 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5장에 기록된 다른 수많은 인물들 역시 첫 아들을 나은 게 100살을 가뿐히 넘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명확한 피임법조차 없던 고대 고대 시대에 100살을 다 넘겨가며 자식들을 나았다는 식의 근본주의적 설명은 자체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걸 일일이 설명해야 되는 것도 참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오히려 적합한 설명은 아마도 3가지 일 것 같습니다.
1) 전설 : 많은 고대 이야기가 그렇듯이 이 이야기 자체도 그저 고대 이야기 속 전설이라는 것입니다. 플라톤 대화록에도 신으로부터 내려오는 일부 족보가 자주 인용되곤 합니다. 물론, 이는 미신에 시달리며 사는 것이 당연했던 고대 환경을 떠올려 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들은 역사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고 과학도 몰랐으며 논문과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것을 알지도 못하고 배운 적도 없던 시대입니다. 따라서 고대 시대인데 정확히 역사적인 설명과 족보가 등장한다면 오히려 조작이 아닐지 의심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2) 유대식 날짜 : 유대식 날짜는 표기 방식이나 년수를 세는 것이 아예 달랐고 이를 잘못 계산하여 표기하거나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큰 수명을 갖게 되었을 것이란 설명도 있습니다. 제가 이에 대해서 현재로써는 구체적인 부분을 잘 모르니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3) 구전 : 사실 1)번이랑 비슷한 맥락인데요. 애초에 창세기는 엄청나게 옛날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구전을 무려 바벨론 시기 때 유대인들이 편집하고 모으는 방식으로 서술되었습니다. 따라서 이것이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사실 그대로 일 거라 기대하는건 애초에 무리입니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근본주의적 혹은 문자주의적 설명을 앞세우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오래 구전되어온 부분이며 성서의 많은 부분이 문학적인 방식을 택했고 시대 성격상 그럴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인지해야만 합니다.
저는 이에 대해서 문자주의적인 설명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주님의 말씀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2장)
예수님께서 성전을 자기 몸을 가리켜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성전을 말 그대로 "성전"이라고만 생각합니다. 많은 근본주의자들의 모습이 이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이들은 성서에 나와 있는 여러 "성전"들을 말 그대로 "성전"으로만 받아들이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덕분에 진정한 의미를 놓치고 있죠.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들을 위해 1600년 전에 이러한 글을 남겼습니다.
"대개의 경우, 지구와 하늘과 이 세상의 구성 요소, 천체의 움직임과 궤도 그리고 크기와 상대적 위치, 일식과 월식의 예측, 일년과 계절의 순환, 동물과 식물 광물 등의 종류 등에 대해서는 기독교 비신자들도 많이 알고 있으며, 이러한 지식은 이성과 경험에 의한 명확한 것이다.
그런데, 비신자에게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의미를 앞세우며 그러한 주제에 관해 사리에 맞지 않는 허튼소리를 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위험한 일이다. 이는 기독교 신자의 엄청난 무식함을 드러내어 비신자들의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므로, 우리는 어떻게든 그런 창피한 상황은 막아야 한다.
그 수치는 단지 무지한 개인이 조롱받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믿음의 울타리 밖의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신성한 성경 저자들 역시 그렇게 무식하다고 생각하게 하며,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힘들게 일한 것도 소용없이, 우리의 성경 저자들이 배움이 없는 이라 여겨져 그들에게 비판받고 거부당하게 될 것이다.
만약 비신자들이 자신들이 매우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 기독교인들이 실수를 하고 우리의 성경에 대한 그런 멍청한 해석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비신자들에게 기독교인들의 경전이 자신들이 경험과 이성으로 습득한 것들에 대해 오류로 가득하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어떻게 죽은 자의 부활, 영생의 희망, 하늘의 왕국을 믿게 할 수 있겠는가?
경솔하고 서툰 성경 해설자들이 유해한 오류에 빠져 우리의 신성한 성경의 권위 밖의 이들에게 비판을 받는 것은 보다 현명한 그들의 형제들에게 전에 없는 곤란과 슬픔을 가져다 준다.
그럴 경우, 그들의 멍청하고 명백히 틀린 주장을 변호하기 위해, 그 증거로써 성경을 내세우고 심지어 그들이 기억하는 많은 문장들이 그들의 입장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딤전1:7)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Genesis I- XIX-39, A.D.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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