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작가님께서 쓰신 글자전쟁이라는 책을 보면 고구려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 한 대목이 나온다 여기에 적지만 이 내용은 전적으로 김진명 작가님께서 쓰셨다는 점을 밝힌다 (글자전쟁 p244~245에 나온다)
"온 천하가 동명태왕의 애민정신을 흠모하여 배우고자 하는 것을 국상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는 공자를 비롯한 성인들께서 말씀하신 군자의 길과 다르지 않은바, 국상께서는 어찌 그리 겸손하게 말씀하십니까? 백성을 아낀 동명태왕의 정신이야말로 최고의 군자만이 갖는 높고 아름다운 덕이요 인입니다"
"하하, 동명태왕께서는 자신과 백성이 다르지 않다고 보신 분이니 군자와는 다르오"
"군자는 인과 덕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선비를 일컫는데 어찌 백성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분을 군자라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충, 효, 예를 갖추라 백성을 종용하는 자가 군자라면 동명태왕께서는 틀림없이 군자가 아니오 오히려 그런 관습에 묶이지 않도록 백성을 풀어주고자 하셨으니"
평생 유학을 신념으로 삼고 살아온 서백창은 을파소의 말에 발끈했다
"신 서백창은 이제껏 충, 효, 예가 백성들과 떨어져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보시오 서백창 충, 효, 예란 필히 사람의 높낮이를 두게 마련이라 모든 백성들이, 하물며 자신까지 평등하다 보신 선태왕의 정신과는 오히려 반대요 유학이 천하의 안정에 도움이 되기는 하나 백성과 백성을 신분 차이로 갈라놓게 마련이니, 가난하고 미약한 백성은 대를 거듭해 낮은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선태왕의 생각이셨소 무릇 왕 된 이라면 유학 그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고"
당장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은 서백창은 을파소의 말을 듣기만 해야 했다
"맹자가 배불러야 예를 안다고 한 것은 바로 유학의 그 모순을 지적한 거요 예를 모른다고 백성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가난하고 미약한 백성을 학대하는 것과 다름없소 진정한 예란 그 형식을 엄정하게 지키는 데 있지 않고 따스한 사랑을 서로 주고받는 데 있소"
"..."
"동명태왕께서는 자신을 버려 평등을 실천하신 분이니 감히 유학의 좁은 세계에 가두어둘 분이 아니오"
"명심하겠습니다"
(여기까지이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이 덧붙이는 부분은 내가 쓰는 부분이다) 김진명 작가님의 유학 해석은 일면 잘못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보자 '배가 불러야 예를 안다'는 말의 뜻은 배가 불러서 예를 아는 사람들을 후히 대우하고 배가 부르지 못해서 예를 모르는 사람들을 하대한다는 뜻이 아니다 논어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 마을에 공자와 제자들이 도착했는데 거기서 제자가 공자에게 물어본다 "저 백성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합니까?" 그러자 공자가 대답한다 "배부르게 해야한다 " 제자가 다시 묻는다 "그 다음에는요? " 공자가 다시 대답한다 "가르쳐야한다"
이 대목으로 이해할 때만 '배가 불러야 예를 안다'이 말의 뜻을 가장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대목에는 공자가 예를 모르니 백성을 핍박하자는 부분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예보다 배를 부르게 백성을 인도하는 것이 먼저라는 답이 나온다 따라서 공자가 통치했을때 배가 고파서 예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공자는 필히 예를 모른다고 핍박하기 이전에 배를 부르게 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진명 작가님은 분명히 공자가 예를 모른다고 핍박했을 것이라고 넘겨짚는데 분명히 이 해석은 논리적으로나 가치적으로 엄청난 잘못이자 왜곡이다 (나는 공자빠도 아니다 공자는 그냥 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성인이라는 칭호도 아까운 사람이 공자이다) 다만 공자빠이든 아니든 논리적으로나 가치적으로 봤을 때 김진명 작가님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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