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서평

<예수는 신화이다>

영웅*^%&$ 2018. 9. 1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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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귀여운 책이다 

이런 책은 정말 안 나왔으면 좋겠다;; 물론 학문의 자유를 위해서는 다양한 책들이 필요하다  

나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책들은 모두 불태워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코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런 다양성이 필요할 수도 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해서는 

진정한 진보가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책을 싫어하는 이유는 역시나 이 책이 '맨 프롬 어스'처럼 비논리의 극치를 달리기 때문이다 ㅠㅜ 

이 책 출판한 출판사가 너무 안 됐다 차라리 내가 쓴 책을 출판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3000배는 

나았을 것이다 물론 나는 30년 내로 책을 출판할 계획이지만 (아직은 내가 책을 쓰고 출판할만한 역량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내고 직접 부딪치면서 많은 것들을 직접 배워야 한다)             

이 책이 왜 비논리적인가? 이 책에 나오는 가설은 19~20세기 신약학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가설이다 

가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예수의 신화는 다른 이교의 신화를 짜집기한 것에 불과하다 혹은 베낀 것이다' 

이 가설이 말이 안 되는 이유는 다른 이교의 신화와 예수의 신화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오시리스 신을 참 좋아하는데 오시리스가 예수처럼 부활했다고?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 쓴 사람은 오시리스 신화를 읽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그냥 이런 책 쓰면 대박이야' 이런 생각으로 쓴 것 같은데 (하... 이런 마인드로 책 쓰는 건 진짜 아니잖아...) 오시리스는 부활한 적이 없다 현실세계에서는 단 한 번도 없다 오시리스 신화에 따르면 오시리스는 부활에 성공했지만 지하세계 혹은 저승세계에서의 부활이었지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부활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예수의 부활은 어떤가? 예수의 부활은 도마에게 나타나서 내 손과 내 옆구리를 만져보라는 생생하고 현실적인 부활이었다 그리고 오시리스는 십자가에서 죽은 적도 없고 (심지어 오시리스는 '남근 부활'했다 이게 예수님의 부활과 유사성이 있을 것이라는 발상이 난 너무 놀랍다) 죄를 대신 짊어지는 대속의 죽음도 결코 없었다

이 책을 쓴 사람이 '아니 다른 신화를 믿지 않으면서 굳이 예수의 신화를 믿는 이유는 뭔데?' 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주 간단히 답할 수 있다 첫 번째 예수의 사역은 정확한 역사적인 증거가 있다 심지어 그 역사적인 증거는 로마의 역사 속에서도 발견된다 이것은 예수가 실존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시리스는 그의 존재를 지지하는 역사적인 증거가 어디에도 없다 그의 신화가 시작되었던 이집트조차 그의 '역사성'을 기록하지 않고 엄청난 신비주의로 그를 그려내었을 뿐이다 

두 번째 예수님은 자신을 믿을 만한 가르침을 충분히 제시했다 세계 모든 사상과 모든 세계관을 볼 때 예수님만큼 여자를 존중한 사상이 있는 줄 아는가? 대답은 no이다 모든 사상과 모든 세계관 모든 종교를 검토해봐도 여자를 남자와 똑같이 존중하라는 사상은 기독교 외에는 없다 불교에 있다고?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안하지만 불교엔 그런 사상이 없다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현대시대에도 충분히 이해될만한 가치를 제시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남자와 동등하게 보았으며 (심지어 어쩔 때에는 편애하였다) 부활의 증거를 여자에게 먼저 보이셨으며, 마리아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간음한 여자를 정죄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이 예수님하고 놀고싶어서 왔을 때 오직 예수님만이 어린아이들을 깊이 사랑하였고 '하늘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라 '말씀하셨다 15세기까지 어린아이들은 그냥 지금의 애완동물 위치보다 조금 더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어린아이들이 소중하다고 가르치셨다 이 클래스를 따라갈 수 있나? 세계의 모든 사상과 모든 종교와 모든 신념을 보더라도 이 클래스를 따라갈 가르침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치가 계몽주의로부터 왔다고?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계몽주의를 일관적으로 적용해서 무신론에 안착하면 어린아이는 그냥 유기물 화학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냥 유기물 화학덩어리의 눈을 뽑아다가 (영화 아저씨에서 나오는 것처럼) 눈을 판다고 해서 도대체 왜 그게 잘못된 것이지? 무신론은 이에 대해 객관적인 도덕을 전혀 제시할 수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만으로 이미 오시리스니 뭐니 약간 과자같이 생긴 잡신은 끝난 것이다 (과격하게 말해서 미안하다) 

세 번째 성경이 보여주는 일관성때문이다 사실 성경은 가장 일관적인 책이다 물론 어렵거나 간혹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도 분명히 있지만 유대 시대 때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메시아의 가르침 다니엘에서 이루어지는 예언의 절정과 이사야에서 보여주는 예언의 절정이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맞물리면서 모두 이루어진다 성경만큼 많은 비판을 받은 책도 드물지만 성경만큼 그 모든 비판을 견뎌서 수 천년을 견뎌낸 책도 드물다 

네 번째 진리의 순교자들 때문이다 오시리슨가 뭔가 치토스같은 신을 위해서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신은 애초에 없으니까 그런 신을 위해서 죽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당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이 많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잠 자는 것을 같이 했던 제자들과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도 순교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했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예수님께서 사실 죄가 엄청 많은데 그 죄를 숨겼을 것이라고 말한다 뭐 하나의 이론이니까 그런 생각이 떠오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이유는 그 당시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도덕적 기준에 있어서 가장 완벽했던 민족이었다 그 제자들이 죄가 있는데 숨기는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목숨을 바쳤다는 것은 애초에 모순이다 설명이 전혀 되지 않는다 제자들이 사실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속이고 짜집기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 후에 제자들이 겪었던 모든 고난을 생각해볼 때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당시는 로마시대였고 제자들도 그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 진리의 순교자들만큼 가장 강력한 증거도 드물다 세상에 이것만큼 강한 증거도 있는가? (제발 이슬람교나 불교도 순교한다는 말은 하지 마시길;; 이건 각자 수수께끼로 남겨두겠다 왜 내가 이런 말을 적었는지 ) 

다섯 번째 성경은 기원에 대해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으며 도덕성에 있어서도 수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가치관을 제시하고 있다 유대-기독교만큼 완벽한 가르침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이미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다만 그 가르침자체를 부정하기 보다는 그 가르침을 지지하는 걸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성경, 유대-기독교에서만 찾을 수 있는 진리가 있다 하나님의 헤세드이다 

호세아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고멜이라는 창녀와 호세아는 결혼했다 그 창녀는 결혼하고 애를 낳았지만 예전 삶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간음을 반복한다 하지만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 고멜을 끝까지 사랑한다 자신을 버리고 또 버리고 또 버리는 그 여자를 찾아서 자신의 아내를 용서하고 끝까지 받아들여준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랑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부족한 피조물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다 하나님을 찾거나 만났더라도 금새 다시 배반하고 자신의 쾌락을 쫓아서 살아간다 내 욕심과 내 탐심이 훨씬 중요하니까 내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엄청난 탄원기도를 드린다 이것이 사실은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헤세드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서도 죽으셨다 당신은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에서 말하는 구원이고 믿음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한 없는 영원한 사랑이기에 그 사랑으로 인해 당신은 구원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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