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훈련소(6) : 가장 큰 위기 그리고 돌파

영웅*^%&$ 2021. 1. 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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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탈의 경지에 이른 나에게 훈련소 포함 군생활 전체의 가장 큰 위기가 찾아온다. 먼저 간단한 배경설명부터 해보자. 

 

배경 : 군대를 가야한다는 생각때문에 공부가 손에 잘 잡히지 않아서 중요한 한 가지 과정을 미리 치루지 못하고 군대에 들어가게 되는 상황이었다.  중요한 과정은 맞지만, 어차피 1년을 통틀어 두 번의 기회가 있기때문에 나는 충분히 군대에 들어가서 상황이 안정된 상태에서도 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엄마라는 우주에서 가장 멍청한 존재가 계속해서 군대 가기 전에 이 시험을 꼭 치루고 들어가야 된다고 (운전면허,토익 그딴 시험 아니었고 나한테는 중요한 시험이었다.) 겁나게 떼를 부려서 결국 어쩔 수 없이 훈련소 입소를 정확히 이틀 앞두고 그 시험을 치루게 되었다.   

 

상상해보라 : 훈련소 입소를 이틀 앞두고 중요한 시험을 잘 치룰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뭐 전세계를 뒤져보면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훈련소를 며칠 앞두고 공부가 될리도 없고 공부가 된다고 해도 이틀 앞두고 중요한 시험을 잘 치루기는 힘들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시험문제를 눈으로 보고는 있지만, 내 마음은 거기에 없었다. 내일모레면 군대에 간다는 생각때문에 문제는 딱히 풀리지 않았다. (만약에 입대를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군대랑 관련된 시험이 아닌 시험은 절대로 치지 말기를 꼭 권고해드리고 싶다. 게다가 중요한 시험이라면 더더욱)  

 

다시 내러티브로 돌아와보자. 아무튼, 어쩔 수 없이 봤던 시험이 훈련소에서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던 정확히 중간 지점에 결과가 나온 것이다. 대략 3주 이상 지났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 불합격 소식을 들은 나는 (가뜩이나 여러 훈련과 압박 때문에 힘든 상황에서) 더욱 힘든 정신적 어택을 당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 진짜 졷 같다.. 그니까 내가 안 본다고 했잖아 씨x 예상대로 불합격이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고난... 나는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아마 여기까지 제대로 읽은 독자는 내가 왜 내 부모를 싫어하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수도 있다. (내 블로그 글 중에서 '천재의 부모'라는 글을 참고해보라) 

'오늘 처음으로 완전히 정신적인 한계가 왔다. 시험에 불합격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정말 현타가 왔다. 진짜 깊은 정신적 도전이었다. 도전과 응전의 원리라고는 하지만 이런 건 진짜 너무 아프지 않은가. 사람으로 태어나면 모두 이런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들은 고통을 느낀다. 누구의 삶은 좋아보이고, 누구의 삶은 빈곤해 보여도 삶은 결코 완벽히 설계된 아름다운 교향곡이 아니다. 삶은 불완전해 보인다. 라플라스의 마녀도 인생을 계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변수는 무작위적이며 그 변화율과 합산은 말 그대로 무한대이다. 한 마디로 계산할 수 없다는 뜻이다. 패턴은 있을 수 있으나 계산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나는 '이 때가 (훈련소에서) 유일하게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훈련소를 마치고 난 다음에 적었다. 행군도 당연히 완벽군장을하고 사격에 각개전투에 화생방에 수류탄까지 등등 모든 훈련을 전부 합격하고 완벽히 해낸 내가 '이 때가 유일하게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했으니 이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힘든 순간에 나는 어떻게 했을까? 감사했다. 신 따위를 믿거나 미쳤기(?) 때문에 혹은 기타 등등 뭐 그런 것 때문에 감사한 건 당연히 아니다. 일단 첫 번째로 그렇게 열심히 훈련을 받고 훈련병으로써 인권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맛없는 밥이라도 매일 끼니가 나오고 열심히 걸어다닐 수 있고 건강검진을 했을 때 몸이 아주 건강하고 등등 분명히 감사할 거리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감사했다. 신 따위를 믿지는 않았지만, causa sui나 우주는 존재하니까 그냥 우주한테 감사했다. 고마웠다. 그리고 앞으로 내게 충분히 이 어려운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과 끈기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역시 더욱 감사했다. 나는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나만큼 운이 없는 사람, 지독히 운이 없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감사하면서 그 모든 어려움과 고난과 지옥을 끈기와 능력으로 돌파해왔다. 길가메시나 헤라클레스가 신에게 받은 여러 가지 시련들 기억하는가? 나 역시 비슷했다. 끝 없이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왔지만, 나는 그 모든 걸 뛰어넘는 끈기와 능력으로 모두 돌파해왔다. 그게 바로 나라는 사람이었다.   

그 후엔 각개전투를 했다. 구급법, 화생방, 경계 기타 등등 많은 훈련들을 달리듯이 돌파해내기 시작했다. 나의 메모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시간이 미친듯한 속도로 달리고 있다. 평균속도의 6~7배의 속도로 하루나 일주일이 달려가고 있다.' (아마 많은 훈련병들이 이 기간에는 비슷한 경험을 하리라 생각한다. 지루할 틈도 없이 훈련에 훈련에 훈련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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