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훈련이 지나고 드디어 마지막 주가 찾아왔다. 나는 1차로 보직과 부대가 결정되지 않아서 거의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보직 받는 걸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나마 마지막 주 주말에는 훈련도 다 끝나고해서 책을 읽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책을 깊게 읽을만한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흡족하게 책을 읽었다. (이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나는 이 훈련소의 기간에만 9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훈련소의 마무리를 얘기하기 전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훈련 두 가지만 적어보자.
1)수류탄 투척 : 게임이나 만화에서는 수류탄 투척을 엄청 재미있고 극적으로 그리지만(예를 들어, 하이브, 개장수) 실제로 훈련소에서 던진다고하면 진짜 심장이 쫄깃 그 자체이다. 심지어, 수류탄이 무서워서 억지로 눈병이 걸렸다고 발악한 애도 있었다. (화생방이 무섭다고 기절한 애도 있었다. ㅋㅋㅋ-물론, 그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런데, 너무 걱정 마시라. 아무나 진짜 수류탄을 던지게 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고인물 그 자체였던 예전 군대에서도 진짜 수류탄을 아무나 다 던지게 하지는 않았다. 훈련을 잘하고 사고 안 칠 확신이 있고 신뢰할만한 애들한테나 진짜 수류탄을 집을 수 있게 하니 너무 걱정 마시라-! 파하! 뭐 아무튼, 나는 연습용 수류탄을 던지자마자 각이 아주 예술이라면서 바로 소대장님의 원픽으로 진짜 수류탄을 던질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건 뭐 감사해야하는건가 ㅋㅋㅋㅋㅋ 뭐 아무튼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진짜 수류탄을 던지는 그 전 날 새벽에 잠을 깊게 자지는 못했다. (물론, 이건 자대 얘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다 ㅋㅋ -기대해도 좋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을 보라.)
아직도 진짜 수류탄을 던지는 그 당일 새벽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굉장히 맑은 날이었다. 새벽 일찍 나와서 진짜 수류탄을 던지는 사람들만 먼저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은 뒤에 빠르게 교장에 이동해서 대대장의 훈시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명씩 한 명씩 수류탄을 던지도록 불려나갔다. 한 명씩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나는 할 수 있다' 소리를 지르면서 힘을 북돋았는데 (그렇게 시켰다) 뭐 어쨋든 나는 그 날 긴장했던 건 맞지만 막상 내가 던질 차례가 되자, 상당히 마음이 평온해졌다. 사실 그건 나 조차도 좀 의문인 부분인데 나는 엄청나게 긴장해야 되는 상황에서도 긴장을 안 하고 차분해지는 성격이었다. 예전에 수 백 명 앞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아무 느낌조차도 없었다.(수 만 명이면 좀 달랐으려나 ㅎ)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강연하는 건 뭐 일상이었으니 그렇다치고 그 공연은 심지어 춤을 추는 거였는데도, 딱히 긴장되고 떨리는 게 전혀 없었다. 뭐 아무튼 수류탄을 던지는 그 날에도 내가 느끼기에는 딱 적당히 긴장된 평온한 상태였던 것 같다. 솔직히, 이걸 혹시나 우연히 보게될 미필자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한 가지 비밀을 알려준다면, 나는 그 때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한 상태였다. 고등학교 때 최면과 명상을 깊게 했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명상을 계속 했었으니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 하는데에는 제법 능통한 편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에도 시간 날 때 꾸준히 명상을 했었다. 물론, 훈련소에서는 명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진짜 수류탄을 받기 전에도, 받아서도, 던질 때에도, 다 던진 후에도 나는 '이건 연습용 수류탄이다. 이건 연습용 수류탄이다. 그러니 연습한대로만 하면 된다.' 이렇게 계속 되뇌이면서 던졌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런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설 때도 전혀 안 떨었던 건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설 때면 그냥 중요한 사람 몇 명만 앞에 있고 그 사람들한테만 얘기를 하듯이 강의를 한다고 상상했다. 그리고 그냥 내가 전할 메세지를 잘 전달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떨리고 말고 할 게 아예 없어졌다. 그냥 내가 할 일을 잘 하면 되는 것이었다. 마음이 엄청나게 평온해졌다. 뭐 아무튼 내 마인드 컨트롤이 잘 먹혔는지 내 손에서 떠난 진짜 수류탄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정확한 위치에 도착했다. 그리고 엄청난 폭음을 울리며 터졌다. 나와 소대장이 안전하게 몸을 숙인 상태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진짜 수류탄을 던지면 숫자를 세면서 소대장과 함께 몸을 숙인다.)
2) 행군 : 물론, 행군뿐만 아니라 사실 각개전투나 화생방, 제식, 사격 등등 다 기억에 남기는 했다. 그래도 어쨋든 행군이 훈련소의 피날레이기도 하고, 이전에도 말한 것처럼 어떤 훈련 다음에 어떤 훈련 그 다음에 어떤 훈련을 한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건 이 글의 목적과는 전혀 맞지 않으니 가볍게 스킵하도록 하자.
한 마디만 하자면, 나는 행군이 나름 재미있었다. 행군이 끝나고 중대장이 애들을 통제하면서 '니네 행군 더 할래?' 이렇게 소리친 적이 있었다. 솔직히 내가 그 때 든 생각은 (이미 수십 km를 완전 군장으로 행군했으면서) '좀 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덤벼' 대략 이런 마인드였다.
우리가 행군을 할 때는 꽤 더운 여름이었어서 어쩔 수 없이 저녁 시간 쯤 부터 시작을 해서 새벽까지 강행군을 했다. (원래 다 이렇게 하나? ㅇㅅㅇ?)첫 출발을 할 때 쯤에는 솔직히, 약간은 떨리기도 했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행군 코스는 몇 개의 산을 둘러싼 어마어마하게 긴 코스를 (오르막, 내리막 다 있었다) 3바퀴였나? 뭐 암튼 그걸 뺑뺑 도는 것이었다. 그 행군 코스까지 가는 거리와 다시 되돌아오는 거리 + 3바퀴를 합치면 20몇km였나 뭐 그랬던 거 같은데 암튼 대략 20~30km 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걸렸던 시간이랑 걸었던 속도랑 따져보면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진짜 훈련소에 곧 입소할 사람을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인데, 군필자들이 한 말들 중에 과장된 말들 진짜 많다.(아마도, 내가 쓰는 이 글 역시 과장은 있을 것이다.) 특히, 훈련에 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나도 군대를 직접 와서 훈련을 다 해보기 전에는 화생방이나 행군 얘기는 거의 초딩때부터 들었는데, 실제로 내가 군대에 가서 경험했던 건 들었던 거랑 딴판이었다. (물론, 쉽기만 했다는 건 아니다. 진짜 그건 뻥이다. 당연히 힘든 순간도 있었다.) 나랑 몇 년 차이도 안 나는 군필자 애들이 행군하다가 기수당 몇 명이 죽었다느니 화생방하면 바늘 몇 천개가 푸슉 푸슉 찌르는 뭐 기타 등등 과장된 얘기를 해서 미필자 애들을 놀리는 걸 보면 좀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아, 근데 나도 화생방 관련해서는 악동뮤지션 이찬혁 씨랑 비슷했던 거 같다.-즉 이건 케바케일 수도 있다.) 솔직히 얘기하면, 훈련이 힘들긴 하지만 하다가 죽고 힘들어서 포기할 정도는 절대로 아니다. 아니 솔직히 나도 했는데 몸 건강한 대한민국 성인 남자가 훈련 못 할 게 뭐 있겠는가? 나도 몸과 건강을 기준으로 봤을 때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 성인 남자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리고 나도 훈련 받을 거 하나도 안 빼고 성실히 다 받았다. 힘든 때도 있었지만 결국에 다 극복할 수 있었고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만약에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곧 입대하는 사람이고 몸 건강한 대한민국 성인 남자라면, 어떤 훈련도 다 할 수 있다고 꼭 얘기해주고 싶다. 진짜 할 수 있다. 쫄 거 없다.
뭐 아무튼 대략 첫 바퀴를 시작했을 때였다. 나는 솔직히 그 때까지도 내 머릿속으로 어떤 책의 내용을 생각하거나 성서의 구절을 반복해서 되뇌거나 나름대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행군이라는 게 어려워보이지만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할 수 있으면 딱히 어려울 건 없다. (나도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이 내용에 대해서 빅터 프랭클이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서 말한 적이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빅터 프랭클은 대략 이런 논지로 말했다. '정신적 영양분이 풍부한 사람은 체력적인 면에서 몸만 거대한 사람을 이기기도 하는데(다시 말해서 그들은 아무리 많은 노동과 불면, 영양부족에 시달려도 버텨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정신적인 영양분이 풍부한 사람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한없이 넓은 정신의 영토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정확한 문장은 아니다. 그러나, 빅터프랭클은 대략 이런 논지로 얘기를 했다. 즉 정신적인 영양분이 풍부한 사람은 나처럼 행군 같은 걸 하는 상황에서도 몸은 걷게하고 정신은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가서 이것 저것을 경험하고 펼쳐보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행군하는동안 심심해서 나도 우주 저쪽 끝 한 번 찍고왔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한 일이었다. 나는 가볍게 첫바퀴를 넘었다. 매고있는 짐과 방독면, 총 등 무겁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기분 만으로는 뛰어가도 될 거 같은 기분을 느꼈다.
두 번째 바퀴가 시작되었을 때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행군을 하기 전에, 사탕이나 기타 주전부리를 나누어준다. 행군을 하는 도중에 먹어서 당 보충을 하면서 계속 걸으라고 주는 것이다. 사탕을 하나 꺼내먹었다. 사탕을 뜯어서 먹었는데 웬걸? 목에 턱 걸려버렸다. '아 ㅈ 됐다' ㅋㅋㅋ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성격상 다 같이 걷고있는 상황에서 조교든 소대장이든 뭐든 누구한테 뛰어가서 사탕이 목에 걸려서 죽을 거 같으니 행군은 못 하겠다는 말을 하기가 좀 그랬다. 물론, 성격도 성격이었지만 포기는 결코 하고 싶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이미 내 모토는 모든 역경과 고난을 당당히 이겨내는 것이었기에.. 나는 중도 포기따위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한 없이 끝없이 걸어야 되는 상황인데 사탕은 목에 걸린 상황이다. 잘못하면 질식사해서 행군하다가 세상에 하직인사하는 상황인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고민조차도 하지 않았다. 'ㅈㄴ 걷자' 이게 그냥 내가 한 생각이었고 실제로 나는 그냥 걸었다. (함부로 따라하지말기를 권한다. 나는 죽을 때 죽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기에 이렇게 한 것이었다. 이런 거 함부로 따라했다가 진짜 세상에 하직인사를 할 수도 있다.) ㅈㄴ 걸었다. 목에 사탕이 느껴졌지만 신경쓰지 않고 걸었다. 나는 다시 정신적인 영토를 이리저리 여행다니기 시작했다. 몸은 걷고 또 걸었다. 나는 몸에 신경쓰지 않고 흘러가는대로 두었다. 죽으면 죽으라지 뭐. 나는 몸을 초월한 정신에 있었다.
세 번째 바퀴가 시작되었다. 목에 사탕을 달고서도 대략 7km를 걸은 것이다. (지금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어쨋든 세 번째 바퀴가 시작되기 전에 잠깐 휴식시간이 주어졌는데 그 때 (내 기억엔) 포카리 스웨트를 주었던 것 같다. 그 포카리를 시원하게 원샷때렸다. 다행히 목에 있는 건 시원하게 내려갔고 나는 완벽한 컨디션으로 마지막 행군을 시작할 수 있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이 강하게 꿈틀거렸다. 마지막 바퀴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행군코스를 지나서 여러 산들도 지나서 다시 막사로 돌아오는 길도 다행히 힘들지 않았다. 충분히 할 만 했다.
고통은 조금 이따 왔다. 위에도 말했듯이 중대장이 얘기했을 때에도 '덤벼'라고 생각했던 나이다.(중대장한테 덤벼라고 했다는 게 아니라 ㅋㅋㅋㅋㅋ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덤벼'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행군이 다 끝나고 난 후 다들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웬걸?? 나는 불침번 초번이었던 것이다. 오우.. 훈련소 하는 기간 내내 불침번이 힘들다고 생각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고 유일했다. 다리가 너무 아픈데 계속 가만히 서있어야하는 그 시간이 진짜 고통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쨋든 나는 이겨냈다. 그 모든 걸 이겨냈다. 감사했다.
내 보직 얘기로 되돌아와보자. 모든 훈련과 일정이 끝나고 흔히 뒷풀이파티같은(물론, 진짜 뒷풀이도 아니고 진짜 파티도 아니지만 ㅎㅎ) 약간의 쉬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육군 최대 보직인 '박격포'라는 보직을 받았다. 그것도 60mm박격포가 아니었다. 81mm이었다.(총 무게만 41kg!) 전과목 우수 합격자였기 때문일까? 내 컴퓨터라는 전공은 ㅇㄷ..? 그냥 룰렛인 거지? ㅇㅅㅇ?
아무튼 훈련소를 마친 직후 부모님께 이 얘기를 했더니 두 분 다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물론, 나 역시도 내 보직이 머리를 쓰는 쪽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이미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지능캐이기 때문에 총과 몸을 굴리는 쪽 보다 머리를 굴리는 쪽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박격포'라는 큰 현실이자 산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훈련소를 넘었는데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 질주할 때였다.
'오늘에서야 (훈련소에서) 모든 훈련과 모든 일정이 끝났다. 훈련소의 밤은 꽤 재미있었고 오늘은 예상보다 정말 빨리 갔다. 평소에 비해 12배 정도로 빨리 지나갔다. 여기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힘듦도 있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기쁨과 행복도 있었다.(그래서 나는 감사했다.) 여태까지 나의 발걸음을 인도해주시고 눈동자처럼 지켜주신 신께 진심을 다해 감사드린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시편 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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