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ㅅㅇ 군대 이야기는 충분히 다 끝마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쩌면 조만간 그럴 기회가 없을 수도 있고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군대 이야기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또 한 동안 블로그에 신경을 못 쓰고 조금 냅둬야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처럼 매일같이 일어나는 영웅적인 행동이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일반적 법칙이라고 믿는다. 내 눈에는 이 모든 것이 경이롭게 보인다. 계획이 어긋나고 협력이 깨지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그런 와중에도 상처 입은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뭔가를 해내는 일도 늘 벌어진다. 그들은 진심 어린 찬사와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들의 행위는 용기와 인내로 만든 기적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등병으로 드디어 자대배치를 받게 된 나는 열심히 일에 적응해나갔다. 사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뒤에 나오는 '빡빡이'가 생생히 기억난다는 뜻이다.) 훈련소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후 아침부터 차를 타고 열심히 자대로 갔지만 거리가 거리인지라 거의 저녁이 되어서야 자대에 도착했다. 자대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고 선임들에 대한 얘기도 얼추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당일날 교회에 대대 내에 있는 병력들이 모여서 대대장 주관 하에 중요한 얘기를 들었다. (뭐 썩 그렇게 대단한 얘기는 아니다. 그 당시에 있던 병력들한테나 중요한 얘기였지.) 뭐 어쨌든 아직도 생각이 나는 게 내 위에 있는 선임 중에 머리를 아주 짧게 깎은 빡빡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첫인상만 봐도 이건 뭐 거의 깡패가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중대장이 따로 와서 나한테 이 자식의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알고 보니 현역이 아니었다-현역은 아니지만 현역군생활을 하고 싶다고 우겨서 들어온 녀석이었다). 중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깡패같이 생긴데다가 군대에서도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을 두고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지 않기는 힘든 일이었다. 뭐 어쨋든 나는 아주 빠르게 일에 적응해나갔다. 청소뿐만 아니라 여러 일과 그리고 근무. 개인임무 등등 많은 것들에 빠르게 적응해나갈 수 있었다. (나의 개인임무는 박격포를 포함해서 총 세 개였다. 나중에 부대를 옮겨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때는 훨씬 더 중요한 임무가 주어졌다. 그 때에도 세 개였다. 부대의 기밀을 위해 어떤 임무였는지 밝히지는 않겠다.) 나 역시도 군대 가서야 알게 된 일이었지만, 나는 업무숙지력이 굉장히 빠른 사람이었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도 그걸 잘 해소하고 적응력이 제법 빠른 사람이었다. 너무 장점만 적어놓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쨋든 나한테도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단점이 있다. 나는 인간관계에 능숙한 편이 아니다. 사실, 사람들과 만나면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성격인 것도 맞고 잘 웃고 분위기를 즐겁게 하는 사람도 맞지만 사람들과의 시간이 주는 가치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진짜 오래 사귀어온 진짜 친구들 혹은 가족들 외에는 거의 사람들과 시간을 가지지 않고 있다. 무의미한 잡담을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쨋든 그런 업무숙지능력덕분이었는지 일에는 매우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두자면, 처음 내가 자대에 갔을 때 속해있던 직속부대는 굉장히 부조리가 심한 부대였다. 대대 내에서도 가장 부조리가 심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부대였다. (뭐라 부르던 명칭이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덕분에 가장 더러운 화장실 청소를 거의 한 달 정도 혼자서 하기도 했다. 내가 맨 처음에 갔던 곳은 화장실이 진짜로 더러웠다. 그리고 후에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얘기하겠지만 (아마 지금 많은 현역들도 공감할텐데) 화장실이나 샤워 등으로 인해 군인들이 힘든 일을 겪을 때가 종종 있다. 다행히 지금은 편안한 집에 있으니 사실 그것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어쨋든 청소 뿐만 아니라 기타 힘든 일과나 흔히 꺼려지는 일들을 거의 도맡아 하게 되었다. 정확히 군대식으로 표현하자면 짬을 맞기 시작한 것이다 ㅋㅋㅋ 아마 부조리 부대였으니 어쩔 수 없는 거 같긴 하지만 ㅋㅋㅋㅋㅋ 내가 위에서 말한 빡빡이의 영향도 컸다. 빡빡이랑 그 위에 있는 직속선임들도 그동안 당해온 게 있으니 계속 부조리를 실행해온 것이다.
지금도 그 때의 나의 일기를 보면 느껴지지만 확실히 이등병들이 힘들긴 진짜 힘들다. (전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등병분들 지금도 다 화이팅입니다. 전역한 사람으로써 말하자면 이등병,일병 결국엔 다 지나갑니다. 절대로 이게 영원하지 않아요. 결국엔 다 지나갑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1303에도 전화를 많이 했었다. 1303은 흔히 관심병사만 전화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근데 나는 부대 내에서 관심병사라고 여겨지거나 흔히 받는 경고 혹은 작은 징계도 하나도 받은 적이 없다. 사실, 내가 1303에 전화를 했던 배경에는 고등학교 때 정말 힘들었을 때 상담을 자주 받았던 경험하고도 연관이 있다. 정말 힘든 때에는 상담도 받고 내 얘기도 하면 내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어려움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힘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진짜 지금도 현역 군인분들한테도 얘기해주고 싶은 게 힘든 때, 정말 너무 힘든 때에는 1303에라도 전화를 하라고 꼭 얘기해주고싶다. 1303에 전화해서 얘기를 하면서 군생활하면 훨씬 전역할 때까지 견뎌내기가 수월할 것이다. 진짜로 너무 힘든 때에는 그렇게라도 전화를 꼭 하셨으면 좋겠다. 대신, 1303에 전화한다고 뭐 엄청 대단한 이득을 얻을 거라는 기대는 없으셨으면 좋겠다. 나는 딱 '상담'까지만 기대했었고 그 기대에 충족했으니 만족했다. 그리고 더 열심히 일과와 맡겨진 임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주변에 같은 병사들이 보기에는 나는 임무에 충실하고 평소에 대단히 성실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최대한 공평히 말해야겠다. 그 당시 내가 쓴 일기를 보면 이런 기록도 눈에 띈다.
'tv를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경례가 아닌 인사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빡센 훈련은 있지만 그 기간을 이겨낼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에 주어진 자유시간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px에 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체육시간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주말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도서관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세탁기를 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축구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맛있는 밥에 감사합니다...' 이런 감사 목록도 있다. 자세히 보면 훈련소에서는 할 수 없거나 하기 힘들었던 목록들이다. 나는 훈련소 때부터 전역할 때까지 그리고 사실 전역한 이후 지금도 하루하루에 감사하면서 사는 편이다. 물론, 그 전에도 감사가 없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내가 감사를 제대로 배운 곳은 군대였다. 군대에 가서야 무엇이 감사인지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군대 가기 전에도 분명히 힘든 기간은 있었지만(심지어 군대보다 훨씬 더 힘들었던 기간이 있었다.), 그 이유는 그곳이 지옥이었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지 무엇인가 결핍되어서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군대에 가서야 나는 결핍이 무엇인지를 배웠고 춥고, 배고프고, 헐벗고, 찬 데서 자고, 손이 뎅뎅 얼어버릴 거 같고, 잠도 안 재우고... 등등 육체적으로 결핍되는 게 무엇인지 생생하게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감사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자대에 배치받은 이 후 나는 훨씬 더 많이 책 읽고 문제를 푸는 데 열중하게 되었다. 당연히 훈련소 때보다 몇 배로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고 군대 전역하기 전까지도 나는 책을 진짜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 운이 좋게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내가 처음 배치되었던 생활관 바로 옆에는 모 대기업이 세운 도서관이 있었다. (진짜 바로 옆이었다) 도서관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작은 규모였지만 책도 나름대로 많이 있었고 무엇보다 시설이 깨끗했다. 그래서 나는 역시 군대에 가서도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들을 손으로 써서 시간이 날 때마다(자투리 시간에) 풀곤 했다.
그리고 지금도 감사하게도 나는 공부연등을 적극 이용하곤 했다. 군대에 가서 (이건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중요한 영어시험을 합격했고 수학문제도 더 많이 풀고 미적분에 대한 기초를 더 탄탄히 다질 수 있었다. 근무, 일과, 청소, 훈련 기타 등등 할 거 다 하면서도 충분히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 후에 스마트폰까지 허락되자 나는 명상 앱을 이용해서 명상을 했고,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영어 문장을 반복해서 연습하고, 사활문제를 풀거나 컴퓨터와 바둑 대국을 했고, 운동 앱을 이용해서 개인 운동을 기록하면서 열심히 운동을 했다. 덕분에 몸과 마음이 여러 방면에서 탄탄히 커져가는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군대에서의 이런 경험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될 것이다). 지금 열심히 군생활하거나 앞으로 군생활하실 분이 이 글을 정말 우연히라도 보게 된다면, 이런 삶의 방식이 좀 힘들긴 해도 추천해드리고 싶다. 요새는 스마트폰이 허락되어 그런지 다들 유튜브영상을 보거나 주식투자 같은 돈벌이를 하면서 시간을 버리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 제발.. 가능한 분들은 (모두가 다 이런 삶의 방식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계발을 하면서 알찬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다. ㅎㅎ
아 그리고 이런 생활 방식은 군대에서만큼은 자신이 할 일을 제대로 잘 하고, 업무나 임무도 다 숙지한 상태에서 (이후에) 하셨으면 좋겠다. ㅎㅎ 흔히 '1인분은 한다'라는 표현을 군대에서 자주 하는데 1인분은 하고 나서 자신의 일도 하면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지만(사실 별로 신경 쓸 것도 없다) 근데 1인분은 커녕 0.3인분도 안 하는데 자신의 일만 하면 그건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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