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병이 되면서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는 부대를 옮기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고 두 번째는 공용화기를 경험한 일이었다.
풀 스토리 (이 글은 내가 상병 때 적은 글이다.)
'어떻게 나는 여기(새로운 중대-대대는 같은 곳이었다)에 오게된 걸까? 이걸 간단히 적어보려 한다. 내가 전에 있던 중대는 내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굉장한 에이스 중대였다. 다들 능력도 정말 뛰어났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았다. 그러나 81mm박격포 자체가 중량이 제법 되기때문에 주의가 산만한 사람이나 몸이 약한 사람들은 종종 다치기도 했다. 그 다친 사람들 중에 브라더꿀병(가명)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브라더꿀병은 정신과 몸 둘 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몸을 다친 후로는 노골적으로 대대장님께 매달려서 의가사한 인물이기도 하다. 뭐 의가사한 건 아픈 몸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근데 이 사람은 거의 의가사를 노렸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픈 타이밍이나 대대장님께 매달렸던 타이밍이 참 완벽했다. 참고로 말하지만, 이 사람이 다쳤던 때는 이등병이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을 때 몸을 다친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몸을 다친 후로는 정말 모든 것을 던지고 아무 것도 안 했다. 비유하자면, 뒷방 노인네와 같았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서 온갖 짬과 부조리를 실현한 미친놈이었다. 이등병 조금 하다가 몸을 다쳤으니 아는 게 있을리가 없다. 아는 것도 없으니 (남들이)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니 몸이 무료하고 시간도 안 간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개소리만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짬이 낮았던 내가 타겟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근데 더 중요한 건 나는 그 당시에 선임분들께 일을 잘 한다는 인식이 잇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선임분들이 인정해줄만큼 일을 열심히 했고 또 잘했다. 내가 선임분들께 이쁨을 받기 시작하고 브라더꿀병은 선임분들이 모두 싫어하기 시작하자 (아무 일도 안 하고 쳐 누워만 있으니 선임분들이 다 미워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브라더꿀병은 나한테 점점 미친 부조리를 실현하기 시작했다. 뭐 지나간 과거이기도 하고 애초에 이 글의 목적과는 맞지 않으니 그 부조리들을 적지는 않겠다. 근데 솔직히 새로운 중대였으면 상상도 못했을 부조리들이 몇 가지 있었다. 뭐 아무튼 나는 그런 부조리를 당하더라도 딱히 찌르지도 않았고 굳이 마음의 편지에 적지도 않았다. 그냥 브라더꿀병이 장애인인 걸 알았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이니 최대한 포용해주고 관대하게 대하려 했다.(물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근데 중요한 사건이 터졌다. 내가 큰 훈련의 선발대로 차출되어 멀리 가있던 사이에 브라더꿀병이 전 중대장에게 내가 하극상을 했다는 말도 안 되는 모함을 했던 것이다. 나는 큰 훈련을 가있는 상태였고 대대에 무슨 말이 퍼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훈련을 다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그 당일 날에 전 중대장은 내 말은 전혀 들어보지도 않고 갑자기 '너는 하극상을 했다'면서 나를 새로운 중대로 보냈다. 이건 진짜 어이 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이 일을 정식적으로 처리하려했다면 전 중대장은 적어도 내 얘기를 조금이라도 들어봤어야 했다. 근데 그는 내 얘기는 전혀 듣지 않았다. 이 자체가 그는 이 일을 정식적으로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빨리 처리하고 싶었겠지 아마도. 브라더꿀병이 다친 책임에는 전 중대장의 책임도 있었기 때문에 그는 브라더꿀병의 말을 최대한 수긍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중대로 가게되었다. 브라더 꿀병의 이름에는 '균'이 들어간다. 마치 원'균'처럼 말이다. 원균이 이순신이 하극상을 했다고 모함한 것처럼 브라더 꿀병은 내가 하극상을 했다고 모함했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새로운 부대로 가게 된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 일 덕분에 나는 새로운 부대에 가서도 하극상을 했다는 말도 안 되는 꼬리표를 받으며 군생활을 했다. 군대에서 하극상을 했다는 시선을 받는 게 어떤 일인지 아는가? (그런데 실제로는 나는 징계, 경고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즉 간부들은 실제로 내가 하극상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병사들만 그렇게 생각했을 뿐) 어쨋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하극상을 했다는 말도 안 되는 꼬리표를 받고서도 나는 그 모든 선입견과 편견을 이겨낼 정도로 군생활을 아주 잘했다. 실제로 새로운 곳에 가서 (여기서는 훨씬 더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거기에 필요한 이론과 실무를 3일만에 익혀서 바로 투입될 정도였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기억 나는 게 새로운 부대에 간지 약 2달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전까지만 해도 나를 괴롭히고 욕하고 놀리던 분대장이 나를 보면서 '와 군생활 진짜 늘었네'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까지 바꿀 정도로 열심히 군생활을 한 것이다.
이제 공용화기 얘기로 넘어가보자. 다음의 글은 공용화기 직후 내가 적은 글들이다.
'오늘로써 공용화기 훈련이 모두 마무리 되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 뭐가 뭔지 모를만큼 공용화기주간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이미 큰 훈련을 돌파해온 나로써는 정말 새로운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로 큰 어려움이 오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솔직히 그만큼 힘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무사통과된 것에 신causa sui께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었다.'
' 우리는 지성을 사용해서도 배우지만 감정과 경험을 통해서도 무엇인가를 배운다. 이번 공용화기를 경험하고 난 후 나는 무신론자가 되고 싶어졌다. 솔직히 내 맘이 무엇인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기엔 너무나 현실을 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더 이상 아름답기만 한 헛소리에 어떠한 감정의 변화도 느끼지 않는다.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신앙의 헛소리에도 속고싶지가 않다.
지금의 나는 신god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없이 부정적인 생각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근데 공용화기 훈련이나 내 고등학교 때 경험 등등을 생각해보면 긍정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고등학교 때 나의 시간은 첫 번째 지옥이었다. 그리고 공용화기 때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정면으로 마주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공용화기 때 어떤 걸 경험했는지 나름 묘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다할 수 없는 그런 경험이었다. 궁금하신 분은 군대에 가서 공용화기 꼭 하시길 바란다. 그것도 박격포를 쌍쌍바로 다 쏘시길 축원드린다ㅎㅎ) 쇼펜하우어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되는데 가장 좋은 경험은 임사체험을 하는 것이다,' 첫 공용화기 때 내가 느꼈던 경험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것도 다른 누군가의 죽음이 아니라 바로 나의 죽음을 마주하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 라고 온몸으로 느꼈던 시간이었다. 아마 나도 더 적응이 된 다음에 공용화기에 갔다면 그렇게까지 느끼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첫 공용화기에 간 시점이 시점이다 보니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이 때에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 정도로만 얘기를 하겠다.) 실제로 나는 전역할 때까지 공용화기 훈련을 총 세 번 갔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느낀 시간은 오직 첫 공용화기 때였다. 상병, 병장 때에는 뭐 까짓거 하면서 엄청나게 편하게 훈련을 할 수 있었다. 거의 뭐 람보 수준이었다랄까? (물론, 농담이다. 나는 람보 영화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ㅋㅋㅋ) 어쨋든 공용화기 훈련을 하면서 삶의 태도랄까 시각이랄까 기타 등등 그런 것들이 많이 변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군생활을 하는 동안 총 네 개의 화기를 모두 직접 다루고 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실제로 연대 전체에서 나 한 명밖에 없었다. 사단까지 가면 또 모르겠지만-아마 육군 전체로 찾아보면 군생활하면서 네 개이상의 화기를 모두 다룬 사람은 꽤 될 거라고 생각한다.) 네 개의 화기를 직접 다루고 쏠 정도의 수준이 되려면, 각각 하나 하나마다 분해/결합 순서를 지겹도록 훈련해서 심지어 한 밤 중에 빛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했다. 실제로 내가 군대에 있을 때에는 그 네 개의 화기를 모두 분해/결합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 밤 중에도 말이다. 농담이나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진짜 농담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이론적으로만 습득하는 게 아니라 그 네 개를 모두 다 손으로 쏴보려면 담력도 좀(?) 있어야되고 자기 암시나 마인드 컨트롤도 좀 잘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직접 쏘면서도 목표물을 향해 정확성을 높여야하기 때문에 엄청난 폭발음이 울리는 상황에서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즉, 목표물을 향해 정조준하려면 사각을 어느정도로 조종해야되는지, 기관총을 쏠 때에는 바닥에 튀는 탄의 궤적까지 머리로 분석해야될 때도 있었다. 나는 기관총도 쐈었다.
지금도 감사한 게 나는 태어날 때부터 꽤 총명한 머리를 타고났다는 것이다. (나는 IQ가 선천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물론, 나는 천재는 후천적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임무가 화기이기도 했지만 나한테 주어진 실제 임무는 총 세 가지였다. 그 중에 하나는 당연히 내 전공하고 관계된 거였고 사실 그래서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내 전공하고 관계된 것이었지만, 그 연관성이 직접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 전공이나 화기 말고도 또 다른 하나는 솔직히 내가 평생에 듣도 보도 못한 그런 내용이었다. 그걸 습득하기 위해서는 작은 책 한 두권 정도 되는 이론을 공부해야했다. (물론, 전공서에 비하면 진짜 귀여운 애기 수준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 전공과 화기와 관련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그 이론서를 습득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마치 내 두뇌가 하늘을 향해 찬란히 비상하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곳에 가서도 나는 내 두뇌능력을 마음껏 펼쳤다. 그 때 즈음에 나는 매일 공부연등도 하고 있었고 전에 말했다시피 영어 공부나 바둑도 꾸준히 공부하고 있었다. 매일 하는 운동도 당연히 빠질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이론서를 독파했고 화기도 하나도 빠짐없이 습득했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양의 내용을 모두 해냈으면서 지금도 건강하게 전역해서 내 길을 뚜벅뚜벅 정진하고 있다는 것이 진심으로 감사하다. 너무너무 감사하다.
*군대 얘기를 좀 더 세세히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러저런 갈등들이나 내가 실제로 겪어여했던 사람과의 인관관계등도 담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흠.. 그냥 앞으로 두 편 즉 상병 하나 병장 때 하나씩 쓰고 마무리 짓기로 했다. 내가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글을 마무리할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세세한 이야기를 굳이 다 적는 게 읽을만한 일인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아마도 군대 이야기는 내 삶의 자산일 것이다. 보통의 상황에서 경험하기 힘든 독특한 인생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내 이야기가 세세하게 전해지는게 누군가에게나 도움이 될만한 보편성이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어쨋든 그래서 상당히 단축해서 핵심과 특별했던 부분들만 잘 정리해서 공유하는 걸로 마무리짓기로 했다. 그리고 어차피 세세한 기록들은 내가 기록해서 가지고 있고 중요한 기억들은 내 두뇌가 기억해서 가지고 있다. 그러니 중요하고 특별했던 얘기들만 간략히 적고 내 군생활이야기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나는 더 중요한 프로젝트를 향해 뚜벅뚜벅 정진해나가야 하므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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