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시편 40편 11절)
'가장 고귀한 즐거움은 이해의 기쁨이다'(레오나르도 다빈치)
'인내와 노력이 없었던 지적인 천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아이작 뉴턴)
일병 때 내가 부대(중대)를 옮겨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서 적었다. 중대를 옮겨야 했을 때 일병이었기때문에 (당연히 그 전에는 휴가를 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적응기에 소초임무 등등이 겹쳐서 내 휴가는 미뤄질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나는 내가 군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올타임record를 세웠다. 아마도,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훨씬 심각하리라 생각한다. 내 기록도 아마 모르긴 몰라도 깨졌을 것이다. 물론, 그건 지금 군생활을 하고 있는 병사들에겐 곧 지옥이라는 뜻이다. (휴가를 못 나가고 계속 군생활하니 얼마나 힘들까..진짜 나는 그 마음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다.)내가 제목으로 택했던 '첫 휴가 복귀하니 병장'이라는 말은 꼭 과장만은 아닌 셈이다. 실제로 내가 군생활을 할 때에도 있었고 지금도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코로나가 심각해져서 공론화되었던 시점이 내가 새로운 중대에 적응해서 막 입지를 다져나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모든 휴가를 부대 차원에서 금지한 적이 있는데 그 때 하필 내가 첫 휴가를 쓴 시점이었고.. (또르르) 뭐 일단 전부 다 지나간 과거이니 여기까지만 하자. 지금은 건강히 전역해서 이렇게 사회에 나와있지 않은가?! 그거면 된 거다 그냥 감사하다.
이제 내가 상병이 된 이후에 얘기를 해보자. 상병을 달기만 해도 많은 부분이 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군번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실상 부대의 실세가 상병이기도 하고, 부대를 이끌어 나가는 병사 라인 역시 상병이기때문에 솔직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상병을 달고나서 변한 부분이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덜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병 때까지는 그래도 선임분들 눈치도 많이 보고 아부도 해드리고 기타 등등 많이 했지만 상병 때부터는 그래도 그나마 그 책임으로부터 조금이지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상병 2호봉 때까지 분대 내에서 막내였기 때문에 그래도 역시 어려운 일들은 앞장서서 하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 있는데 부대 내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손 꼽히는 일이 있었다. (뭔지는 말 안 하겠다 ㅎㅎ 아마 부대 조건이나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1번 정도 하는 정기행사 같은 게 있었다) 나는 그걸 일부러 하겠다고 나서서 총 10번이 넘게 했다. (보통 부대원들은 많이 해야 5~6번 정도 하고 전역했다. -심지어 1번이나 0번을 하고 전역하는 사람도 있었다.) 단순히 어그로를 끌거나 ? 뭐 기타 등등 그런 이유로 한 건 아니었고 ㅋㅋ 그냥 나는 나름 재미있어서 한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힘들었던 일이긴 한데 그래도 나름 추억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아무도 해결하지 못해서 손 놓고 있었던 문제가 있었는데 나는 그것도 나서서 바로 처리해 버렸다.
아무튼 주변 사람들한테 관심을 덜 주는 대신에 나는 자기계발에 더 몰두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미 이등병 때부터 운동, 영어 공부, 독서, 명상 등을 꾸준히 했던 나이지만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사회에서 이미 그렇게 했더니 자연스럽게 군대에서도 하게 되더라 ㅇㅇ; 사람은 원래 잘 안 변한다.) 상병이 되니 시간이 더 늘어나서 (주변 터치도 이등병, 일병 때보다는 확실히 적어졌고) 자기계발에 몰두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참고용 시간표가 있다. (물론, 대략적인 시간표였고 이렇게 항상 맞춰서 살 수는 없었다. 군대는 시간을 내 맘대로 쓰라고 냅두는 곳이 아니니까 ㅎ;)
기상 -> 점호
-> 아침시간 : 산책하면서 생각, 시간 10분이라도 나면 부대 내 도서관 가서 책 읽음
-> 오전 일과 or 근무 -> 점심시간 : 시간 10분이라도 나면 도서관 가서 책 읽음
-> [부대활동] -> [오후일과] -> 체력단련 -> 개인정비 : 영어공부, 명상, 개인운동
->공부 연등 -> 잠
우리 부대는 근무 시간이 워낙 많은 부대였고 체력단련도 매일 했던데다가 훈련도 계속 하는 부대였기 때문에 당연히 당연히 내 시간표대로,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5대기를 계속 찼기때문에 뭐 맛있는 거를 먹다가도 5대기가 치면 달려나가기도 했다. (나는 병장 때까지도 5대기를 계속 찼다. 소초에 간 기간을 제외하고는 5대기를 풀어본 적이 없다.) 다른 부대에서는 5대기를 차면 일과나 근무 혹은 작업 등에서 열외를 시켜주는 경우가 있다고 들어본 적은 있지만, 우리 부대는 당연히 그 딴 거 없는 부대였고 오히려 5대기인 사람들이 근무와 작업을 앞장서서 해야하는 처지였다. 당연히 나도 산으로 바다로 다니면서 일과, 근무, 작업, 훈련 등등을 계속 했다. (부대 비밀을 위해 구체적인 사항은 적지 않았다.)
어쨌든 그래서 상병 때 나의 군생활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자기계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뭔가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으면 오히려 더 운동을 열심히 할 수 있겠다!! 하는 마인드로 감사하면서 군생활을 했다.(youtube에 '스트레스의 놀라운 반전'이라는 영상이 있다. 그 영상 찾아서 보시길 추천드린다.) 병장 때까지 5대기를 찬 사람은 우리 아빠 군번부터 내 군번까지 나 한 명밖에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인드를 더 긍정적으로 먹을 수 있었다. 맛있는 걸 먹다가도, 일과를 하다가도, 근무를 서다가도, tv를 보다가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다가도 5대기는 쳤지만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감사했고 (물론, 책을 읽거나 한창 집중하고 있을 때 5대기 치면 '이런 x..'라는 말이 먼저 나오긴 했다. 나도 사람인데.. 이건 어쩔 수 없는 자연 반응이랄까 ㅎ)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 오히려 더욱 간절히 내 자기 계발에 나의 계획에 열중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근무, 일과, 작업, 훈련 모든 것들에 다 최선을 다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상병 때에도 공용화기 훈련이 있었고 여러 큰 훈련이 있었지만 나는 이전보다는 훨씬 능숙하게 수행해나갔다. 오히려 여러 힘든 일들이 계속 있고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내 한계를 돌파해나갈 때 나는 더 강해졌던 거 같다. 이 때 쯤 카일 메이나드, sisu 영상을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의 영상을 보면서 (sisu 영상은 단순히 inspiring 영상이 아니다.) 더욱 힘을 얻어서 내 한계를 돌파해나갈 수 있었다.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지금도 감사하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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