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억에 의지해서 병장 때 얘기를 써보려고 한다. 병장 때 솔직히 워낙 짧아서 큰 의미가 있나 싶긴 하다. 요새는 병장이 좀 더 길어졌다고 하던데(사실 신경 안 써서 정확히 모름) 예전에는 병장 기간이 더 짧았다. 병장 때 워낙 짧았어서 가지고 있는 기록도 별로 없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기록을 봐도 군생활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고 그 당시에 몰두했던 거에 관한 기록들이 많다.
나는 전역이 한달 남았을 때에도 소초에 있었다. 그래도 지금도 감사한 건 소초에 들어가서는 훨씬 더 운동, 독서, 영어 등등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는 것이다.(일단 5대기를 안 차니 ㅎㅎ) 지금 생각해도 기특하면서 신기한 게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하면서 지치지도 않았고 훨씬 힘이 많이 났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마 똑같을텐데 내가 전역할 때에도 전역 전 휴가를 통해서 사회로 나갔다. (조기전역 아님) 군생활 열심히 했던 애들의 휴가를 자를 수는 없는 형편인데다가, 코로나와 부대 특수성때문에 휴가를 도무지 나갈 수 없었던 병사들은 다 전역 전 휴가를 통해서 나갔다. (실제로 법령을 찾아보면 병사들의 휴가는 보장해주도록 되어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점은 내가 거의 6~8일 정도 손해를 보면서 휴가를 나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정도 손해를 봤는데도 동기들 중에서 가장 먼저 전역 전 휴가를 나가는 사람이었다. 휴가가 워낙 많다 보니, (나는 군생활 하면서 전역 전 휴가를 나가기 전까지 휴가를 딱 한 번 나갔다 왔었다. 아마 한 번도 못 나갔다가 그냥 전역 전 휴가를 나가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손해를 봐도 동기들보다 빨랐다. 6~8일 정도 손해를 봤지만 그냥 덤덤했다. 여기서 병장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병장 때에는 후임들한테든, 장교든 부사관이든 등등 이리저리 얘기해도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집에 갈 사람이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다 알고 있다. 그러니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기면 까짓것 손해 좀 봐줘라.
지금도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내가 집에 가기 정확히 이틀 전이었다. 갑자기 하사 한 명이 오더니 나한테 시비를 걸었다. 그러면서 엄청나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일이다. 그 사람이 화를 냈지만, 솔직히 나는 웃고 있었다. 웃으려고 웃은 게 아니라 ㅋㅋㅋ 그냥 집에 가기 이틀 전에 누가 뭐라고 하니까 너무 웃겼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그게 심각한 일도 아니었고 작은 일이어서 더 웃었다. (내가 잘못한 일은 아니었다. 그 사람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다.하지만, 충분히 오해를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 사람은 내가 이틀 뒤에 집에 가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던 거 같다. 그냥 나한테 뭔가 알 수 없는 열등감? 뭐 그런 비슷한 걸 느끼셨던 거 같다. 그리고 나를 눌러서 내 후임들도 누르겠다는 계산도 하신 거 같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ㅎㅎ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웃음은 났지만, (내가 잘못한 게 아니었어도-어쨋든 그 신분에서는 나보다 상관이니) 정확히 사과를 했고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같이 해결을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민간인이지롱~~ㅎㅎㅎ)
뭐 아무튼 정리해서 말하자면, 병장 때에는 손해 좀 봐주면 된다. 휴가가 며칠 짤려도 너무 슬퍼할 거 없다.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닌 거로 욕 좀 먹어도 너무 신경쓸 거 없다. 그냥 웃어넘기면 된다. 어차피 집에 갈 사람들 아닌가? 이 부대에서 신경쓸 건 이제 더 이상 없는 셈이다. 물론, 주어진 임무나 근무가 있다면 그거에는 매일 매일 1인분은 해야겠지만 말이다 ㅎㅎ 좀 기분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그냥 웃어 넘어가 주라 병장 때에는 괜히 더 까칠해지기도 하고 그럴 수 있다. 후임들한테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최대한 자제하고 후배들은 후배들이 알아서 잘 하도록 냅둬라. 상병 때 열심히 도와주었으면 병장 때는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아무튼 나는 병장 때에도 상병 때랑 비슷하게 군생활했다. 상병 때에는 후임이 중요한 일을 못하면 가르쳐주거나 혼내기도 했지만(나는 군생활 하면서 후임한테 크게 뭐라고 해 본 기억이 딱 두 번밖에 없다. 그 두 개도 중요한 일이어서 혼을 낸거였다. 그 외에는 후임들을 완전히 풀어주었다.) 병장 때에는 후임이 못하는 경우를 보더라도 굳이 가르치거나 혼내지는 않았다. 애초에 내가 신경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각 분대마다 분대장들이 있고 그 분대장들이 훨씬 더 많이 신경을 쓰고 있을테니 딱히 상관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맞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가 드디어 전역 전 휴가로 집으로 출발하는 날이 왔다. 나는 동기들 중에서 가장 빨랐지만, 나랑 똑같은 날에 출발하는 동기가 나 포함 세 명이 있었다. 전역 전 휴가였지만 대대장 님께서도 직접 나오셔서 같이 축하를 해주었고 전역식처럼 후임들이 박수도 쳐주고 전역감사장도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너무나 감사한 게 그 때 나는 동기랑 같이 뛰어가면서 진짜 소리치면서 너무너무 행복했었다. '전역이라니 내가 전역이라니..' 막 이런 식으로 동기랑 같이 얘기하면서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고 느꼈다. 군생활을 건강히, 성실히 하다보면 전역이라는 게 사실 당연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복무한 기간이 꽤 길다보니 전역은 남의 얘기라고만 생각했었던 거 같다. 진짜 그 순간이 말 그대로 꿈만 같았다. 사실 지금도 이등병 때랑 일병 때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내가 전역한 걸 생각하면 신기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와.. 그 때 그랬었는데 어떻게 전역을 한 거지? 시간 참 빠르다..' 뭐 이렇게 비슷하게 느끼는 것이다. ㅎㅎㅎ
전역 전 휴가를 받은 후에는 전역 날짜도 지나서 이제는 완전히 민간인이 되었다. 사실, 민간인이 된 지도 꽤 되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기간이 짧다 보니 현역 군인들의 마음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역한 나는 되돌아보면 시간이 참 빠르다고 느끼지만, 지금 복무하고있는 현역 군인분들이야 당연히 시간이 왤케 안 가냐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지루하다든지 아니면 힘들다든지, 슬프다든지 혹은 외롭다든지 등등 당연히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끼며 열심히 군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다 지나간다'라는 인생의 진리이다. ㅎㅎ 예전에 훈련소 때 기록을 쓰면서도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사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내가 처음 자대에 가서 처음으로 샤워장에 갔던 일, 그 때 먹었던 밥, 혹한기의 추위, 밤샘훈련의 기억, 후임들과의 추억, 선임분들이 나를 도와줬던 일 등등.. 많은 기억들이 있다. 지금은 군생활이 긴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당연하다. 하지만, 어쨋든 '다 지나간다'
그리고 나만 통했던 건지도 모르겠는데 진짜 말년 병장 때에는 시간이 잘 안 간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근데, 솔직히 나는 그 때 시간이 오히려 정말 잘 갔었다. 왜냐하면, 나는 책을 엄청나게 읽었기 때문이다. 내 동기들이 '와 시간 안 간다' 이렇게 느끼고 있을 때 나는 '와 시간이 천천히 가면 개꿀인데? 책 더 많이 읽을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책을 겁나 읽었다. 물론, 말년에는 핸드폰도 사용하게 해줬지만 원래 핸드폰을 많이 쓰는 성격이 아니다보니 책을 많이 읽고, 운동을 하고, 영어를 습득했었다. 시간이 천천히 가는 거 같으면 오히려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 ㅎㅎ 책을 쌓아놓고 읽고있다보면 확실히 시간이 빨리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건강히 전역한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나의 끈기이자 신의 돌보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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