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더웠던 어느 날
나는 동기들과 함께 초조하게 똑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여러 이름들과 함께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내 이름을 찾으려고 빠르게 훑었다. 108!! 뭐지 이게? 108의 뜻이 뭔지 몰랐던 나는 훈련소 과정이 끝나고 나서 주는 잠깐의 외출시간에 검색을 해보았다. 박격포였다.
훈련소에서 체력, 사격, 수류탄, 행군, 각개전투 등 모든 훈련에서 특급을 받은 나는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반 소총수로는 복무하고 싶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 전공이 컴퓨터였으니까 컴퓨터 관련 보직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눈 앞에 직면한 현실은 ‘박격포’였다.
박격포는 육군의 꽃이라고 불린다. 총 무게 41kg이고 훈련할 때는 그걸 들고서 맨몸으로 산을 타야 한다. 물론, 총하고 기타 물품들은 이미 몸에 장착된 상태로 박격포를 플러스로 들어올리는 것이다. (전체 무게가 얼마인지는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다. 그걸 오직 자신의 맨몸으로 다 들고서 산을 탄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현실은 나의 기대대로만 되는 건 아니구나. 현실은 나랑 상관없이 ‘나름대로’ 움직이는구나. 이미 알고 있던 진실이었지만, 이 때만큼 뼈 아프게 다가왔던 적이 있었던가.
자대배치를 받은 이후에 큰 훈련이 한 번 있었고 작은 훈련이 한 번 더 있었다. 그 이후에 나는 처음으로 ‘공용화기’라는 훈련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격과 행군을 동시에 하는 기분이었다. 훈련소 때 완전군장으로도 행군을 휘파람 부르면서 했던 나였는데 정말 그렇게 힘들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당신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임사체험이다”(쇼펜하우어)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충분히 버틸만한 수위였다. 체력보다 훨씬 더 힘들었던 점은 ‘이렇게도 죽을 수 있구나’라는 그 느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모두가 다 죽는다. 이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단순명료한 진실이다. 하지만 겨우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조금 다닌 사람이 어떻게 죽음에 대해서 알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겠는가. 그 때까지 나는 죽음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생각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 죽음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아무 특정한 이유도 없이 그냥 죽음으로 인생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나도 결국엔 죽는구나’라는 진실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 할 때 정작 나의 죽음에 관한 생각은 슬그머니 뺀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이 되었다.
글로써 그 때의 현장감을 느낄 수는 없지만,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었는지 조금만 설명해보겠다. 공용화기 훈련 중에 내 후임 한 명이 폭탄을 옮기는 역할을 했다. 실제 폭탄을 몇십 개 모아놓은 상태에서 하는 훈련이기 때문에 정말 작은 실수로도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실제 훈련 상황에서 장교들은 병사들에게 절대로 뛰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를 주었다.
그런데 그 미친 놈은(이런 표현밖에 쓸 수 없어서 미안하다) 폭탄을 들고서 뛰었다. 표정만 보면 무슨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도 찍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영화 같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절대로 좋지 않은 신호이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미친 놈은 폭탄을 땅에 찍었다. 뛰다가 넘어져서 폭탄을 놓친 것이다. 착발 신관이었기 때문에 그 폭탄이 터지지 않은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폭탄이 터졌다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일대의 수십 명이 모두 죽었을 것이다.(폭탄이 연쇄적으로 터졌을 테니까) 그리고 뉴스에는 딱 한 줄이 나왔겠지.. ‘OO부대 훈련 중에 수십 명 사망하다’ 그 때에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뉴스에 나오는 저 달랑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현실이구나. ‘아.. 나도 죽을 수 있는 거구나. 현실이라는 게 그런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그 때에야 나의 머릿속을 깨웠다. 참으로 귀한 깨달음이었다. 책을 1000000000권을 읽어도 활자만 보아서는 절대 깨닫지 못하는 깨달음을 그때에서야 얻었다.
생존, 생존이었다. 순수히 삶을 향한 열의는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이었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밥만 따스히 먹으며 머릿속으로 이론만 생각하는 심리학자들이 읊어대는 인간에 대한 온갖 말도 안 되는 이론을 믿지 않을 수 있는 힘은 바로 거기에서 나왔다. 삶의 또다른 진실을 비추고 있던 문을 열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빅터 프랭클을 사랑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실제로 나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군대에서만 세 번 읽었다. 그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와 공감되는 부분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박격포의 그늘 아래에서 어른이 되었다.
내 인생에도 죽음이라는 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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