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영웅 이야기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영웅*^%&$ 2024. 3. 18.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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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 초였나 여자친구에게 힘들었던 과거까지 보여주며 울었던 부끄러운 모습을 떠올리며 이렇게 글을 적어야하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나는 여자친구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거의 비밀이 없는 단계이기도 하지만...

먼저 글을 쓰기 앞서 역시도 한국의 많은 모부(부모를 부르는 나만의 애칭이다)들에게 인생에 어떤 부분들을 희생당한 그냥 일반적인 한국에 살았던 사람들 명이라는 점을 먼저 말하고 싶다. 이미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15년도 전에 말했듯이, 한국은 현재 빠른 속도로 붕괴하고 있다. 이미 한고쿠의 붕괴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특히 이번(2024) 의료대란이 그걸 중점적으로 가장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앨빈 토플러는 한고쿠 사회가 점점 망할 것이며 그에 대한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워딩은 이게 아니지만, 다시 말해서 한국 부모들 스스로 한국을 없앨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 현세대 한국 모부들은 이에 대한 책임감에서 벗어나 스스로 모든 갖가지 핑계만 대기에 열중하고 있다. 세상에 가장 빠른 속도로 멸망하기 위해서 가장 바쁘게 사는 나라라니 이런 역설이 있을까. (정확한 예언 : 한고쿠는 앞으로 열심히 대선이나 총선으로 정치권을 심판한답시고 손바닥 뒤집듯이 정권이나 당이 바뀌게 것이다. 그렇게 기존 것을 엎어치기만 반복하다가  30 사이에 완벽히 망하게 것이다.)

 

##모부의 대트롤 그러나 결국엔 승리하다 : 번째 지옥게임

 

한고쿠 얘기는 이만 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글은 과거에 있었던 첫번째 지옥게임과 박격포에 관한 주관적 해석에 따른 글이다. 그래서 글은 정확한 회고록도 아니고 객관적인 기억도 아니다. 나는 애초에 인간이 객관적인 기억을 가질 있는지 의심이 든다. 인간의 두뇌는 일반적으로 서로 연결하며 다차원적인 기억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컴퓨터처럼 디스크 방식으로 기억한다고 하여 그게 '객관적이다'라는 보증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정확함이 객관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경험이 객관적일 있을까? 따라서, 나는 철저히 주관적인 차원에서 글을 작성할 것이며 글은 그저 주관적인 기억을 조망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는 (복잡한) 경험과 기억의 주관성에 대해서 인정할 밖에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가지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게 무엇이냐면, 번째 지옥게임은 대부분의 기억을 스스로 긍정 최면으로 주관적인 해석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기억들을 거의 지웠기 때문이다. 내게 남아있는건 본질적으로는 주관적인 해석 외에는 거의 기억의 파편 정도이다. 최면이나 이런 쪽을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기억을 통째로 지우는 불가능하다. 적어도 현재로써는 민간 차원에서는 SF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거의 본질적인 부분과 가끔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거추장스러운 부분들이 삶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도록 없애버릴 수는 있다.

 

"나의 성적은 전교 3등까지 상승했다.

 

1학년이 끝나고 나는 /이과를 고민하고 있었다.

몇몇 분들이 문과를 말해주었지만 솔직히 나는 이과가 끌렸고 결국엔 아빠의 강력한 주장에 밀려 문과를 선택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지옥의 문을 열고 말았다. "

 

사실 그렇게 대부분의 것들은 기억이 나서 글을 보고서 다시 떠올려 보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야 박격포가 힘들었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단언컨대) 번째 지옥게임이 훨씬 힘들었다. 번째 지옥게임은 "누군가의 고등학교 이야기"라는 글로 블로그 안에 있고 감동 실화이다.

그래서 조금 주관성을 높여 이야기를 조망해보자. "나는 점점 왕따가 되어갔다. 게다가 선생님들도 나를 손가락질하기 시작했고 부모님들도 나를 거의 미친놈 취급했다. 이게 그냥 피해망상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이게 진실이었다. 안타깝게도 이게 진실이었다. (중략) 나는 입시에 실패했고 예수는 죽었던 십자가에서 나는 100번은 넘게 죽었다.

 

전교권이었던 성적을 알았던 친구들이 전부 나를 비웃으며 떠나갔다. 마치 갈대를 손에 들고서 빨간 옷을 내게 입히며 왕노릇하라며 나를 비웃는 것과 같았다. 나는 매일 벌벌 떨었다. 부모도 선생도 나한테 책임을 떠넘기며 나를 비웃기 바빴다. 신께 기도드렸던 덕분에 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졸업식까지 날마다 죽었다. "

 

이런 식으로 우리의 빼어나신 모부는 결국엔 최고급 참돔으로 매운탕을 끓여버리는 혹은 최고급 한우로 개사료를 만들어버리는 대단히 멋진 선택을 했다.

이것이 누군가의(그게 바로 나지만) 감동실화라는 점이 너무 멋지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글의 주인공인, 감동실화의 주인공인 나는 이후 학사과정을 하면서 이과수학과 대학수학 그리고 공학수학을 모두 스스로 다시 처음부터 공부해나갔다. 사실 생각해보면 말이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 영국에까지 와서 대학원 과정을 하면서도 수학을 가장 잘하는 사람은 바로 나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연구를 하면서 수학 활용에 있어 최상위 수준을 보이고 있는데, 그건 내가 스스로 이과수학과 대학수학 그리고 공학수학 (당연히 이산수학까지)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해왔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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