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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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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거 종나게 재미 없잖아 (1) *이 글은 종교, 신앙, 신 등에 관한 서술이 적혀있습니다. 불쾌하실 수 있으니 종교, 신앙, 신 등에 대해서 지금 글을 읽고 싶지 않으신 분은 미리 나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부터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신, 종교, 예수 그리스도 등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이 글이 어떻게 진행될지 어떻게 끝날지 지금의 저도 잘 모릅니다. 아마 틈틈이 이 관련 글을 정리할 수 있을 거 같네요. 첫 번째로 얘기할 주제는 쿠르트 괴델의 '신의 존재에 대한 수학적 증명'입니다. 정말 안타깝지만, 저는 일반인들 중에서는 이 논증을 이해한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소위 뛰어나다는 지적인 무신론자들 중에서도 이 논증을 이해하거나 직접 반박을 시도한 이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구요. 아마 학식이 깊다는 사람 중..
바트 어만의 헛된 기대 (이 글은 바트어만을 비난하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다만 그의 글 혹은 생각을 심층적으로 조망해보자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바트 어만은 무디 성서학교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무디 성서 학교에 있을 때 그는 기독교 신자였고 성서에 쓰인 모든 문장과 사실이 완벽히 팩트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그는 이것이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믿음을 버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궁극적으로' 무디 학교의 관점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완벽히 사실이거나 아니면 그저 구라에 불과하다' 라는 관점입니다. 이는 성서의 장르적 특성, 시대적 상황을 완전히 무시한 것입니다. 아니 최소 2천 년 전에 쓰인 고전 문학이 어떻게 현대 체계에 걸맞은 사실주..
성서는 기본적으로 문학입니다 *얼마든지 생각이 다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에 대하여 각 개인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창세기 등 성경의 많은 부분이 구전이라는 건 명백합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 사건이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나온 아들을 '셋'이라고 불렀습니다. 성서에 따르면, 셋을 낳았을 때 아담의 나이는 백 삼십세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낳고도 무려 수십 년 동안 자식이 없거나 딸만 나았다는 설명은 당연히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담과 이브에 대해서는 '에덴 동산에 오랫동안 있었고 쫓겨난 뒤에 자식을 낳아서 그런 것이 아니냐?'라고 근본주의자는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합당한 설명은 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5장에 기록된 다른 수많은 인물들 역시 첫 아들을 나은 게 100살을 가뿐히 넘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례한 개독교 -1 착각의 늪 (feat. 스토킹) *이 경험은 개인의 경험으로 각기 내용이 상이할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아래에 나와있는 경험은 최대한 사실에 기반하여 적혀있으며 필자 본인의 경험에 의거하여 적었습니다. 이 글은 어떠한 비난과 비판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 개독교의 현상을 바라보고 도대체 이들이 왜 이렇게 하는지 조금이나마 파악해보고자 하여 적게 되었습니다. 어제 제 친할머니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잘 보내드리고 잠시 시간을 내서 쉬고 있을 때 제 삼촌 멀천트가 장례식장에 왔습니다. 미리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저는 과거에 멀천트 덕분에 신앙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멀천트는 개척교회 목사이고 이 분 성격과 발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멀천트는 어떻게 하면 상처를 더 깊이 줄 수 있..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보는가 (3) 내가 전역하고 나서 그리스도교에 다시 관심이라도 가져보게된 시점은 오강남 씨의 와 볼테르의 을 읽고난 이후였다. 니체의 와 와 바트 어만의 책들 그리고 고고학적인 증거 등을 검토해보면서 나는 신은 확실히 죽었고 성서는 개소리이며 제발 내 인생에서 개독교가 사라지도록 기도했다 ​ 그 후 나는 몇 개월 간 해킹에 파묻혀 지냈다. 덕분에 지금은 실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긴 뭐하지만, 드림핵이나 여타 다른 곳에서 내 순위는 높은 편이다. 그에 걸맞게 매일 더 정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어릴 때 습관 그대로 수많은 책들을 여전히 읽었다. 지금 20대 중반에 읽은 책들이 거의 만 권에 육박할 정도이다. 오강남 교수의 를 읽으면서 나는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고 느꼈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붕괴..
왜 기독교 믿음을 버리게 되었나?(2) 앞에서 갈등의 이유에 대해서 적었다. 이거 말고도 나는 말도 안 되는 몇 가지 인격 모독도 겪었다. 그거에 대해서 얘기해봤자, 너무 개인적이라 와닿지 않을 것이니 얘기하지 않도록 하겠다. 아무튼 덕분에 나는 평소보다 무신론자들의 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러셀, 볼테르, 도킨스, 히친스, 니체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의 책을 다시 읽었다. 그러나 여러 경험들과 지식 등은 내 신앙까지 완전히 죽이지는 못했다. 니체의 표현대로라면, 신앙의 용은 몇 번이고 되살아났다. '신은 죽었다' 생각할 때쯤 어느새 내 곁에서 나를 돌돌 말아 쌈 싸먹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경험 등과 지식 등이 있었지만, 여기서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걸 하나하나 다 설명하다보면 글이 너무 난잡해진다) 결정적으로 나를 무신론으로 ..
왜 기독교를 믿었나? (1) 나는 왜 맨 처음에 기독교를 믿었던 걸까? 과거 회상을 평소에 잘 안 하는 덕택에 그 이유를 세세히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그냥 간단히 말하면 어린 시절의 영향이 제일 컸던 거 같다. 어릴 때부터 성당 유치원에 다녔고 자연스럽게 신앙을 접했다. 주변에는 온통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그게 자연스러운 것인 줄 알았다. 믿음은 모든 인간이 가지는 기본값인 줄 알았다. 그렇게 의식이 있던 아주 어릴 때부터 대략 초등학교 때까지는 한 번도 의심을 해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의심이라면 의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한 생각을 처음 했었는데 그건 공룡이었다. 학교에서 공룡과 대멸종을 배웠는데 성경의 어디를 들여다 보아도 공룡 얘기가 없었던 것이다. 성경을 신의 우주 창조 이야기로 이해하고 있던 나는 있었던 증거가 확실한..
구원하지 못하는 개독교, 고자 개독교, 용서를 못하는 개독교 오늘은 내가 겪었던 일에 대해서 잠깐 글로 써볼까 한다. 사실 개독교에 대해서 여러 경험과 좌충우돌도 많았고 여러 교리나 책 관련된 사실, 고고학적인 증거와 과학 역사 등등 내가 알고 직접 찾아보고 연구한 자료들이 정말 정말 많지만, 오늘은 그것에 대해서 보지 않겠다. ​ 오늘은 내가 직접 겪었던 단 하나의 실화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보고 그에 관해서 추측을 덧붙여보도록 하겠다. ​ 먼저 있었던 일 그대로 : 내가 예전부터 다녔던 교회가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그 교회에 나갈 수 없었고 그 이후에 코로나까지 겹쳐서 그 교회에 한동안 나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도 그 교회에 나갈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근데 정말 이상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내가 그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