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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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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3) 다시 몇 년이 지났다. 우리 둘 다 어느새 2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서로 가끔 연락을 하면서 지내는 정도일 뿐, 실제로 만나는 횟수는 현저히 적었다. 내 글들은 나름 명성을 얻었고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나는 여러 개의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을 발표하였다. 그 중에 몇 개의 글들이 찬사를 받으면서 나는 운이 좋게도 나름 명망 있는 작가로 대우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독서를 즐거워하면서 얻은 부수적인 이익이었다. 나는 시대적인 작가가 되고싶은 욕망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찬사가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감사함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면서 대단히 사무적인 일을 반복하는 신문사에도 사표를 내게 되었다. 신문사 사장은 내 사표를 보자마자 말했다. “자네, 얼마를 원..
영웅 (2)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그가 여러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을 새벽까지 미친 듯이 마시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앞에 생소한 여자가 나타났다. 물론, 나한테 생소한 여자였고 그와 그녀가 말하는 톤으로 유추해보건대, 분명히 둘은 꽤 깊은 사이였던 거 같다. 그녀와 여러번 같이 밤을 보냈음은 확실했던 것 같다. 그녀는 갑자기 약이 든 병을 보여주며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주변에 음악 소리가 워낙 컸던지라, 그녀가 뭐라고 말하는지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그녀는 분명히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식으로 말했던 거 같다. 그는 피식 웃었다. 정말로 그는 피식 웃었다. 약병을 들고 손을 벌벌 떨고 있는 그녀 앞에서 그는 피식 웃었다. 이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약병을 통째로 입에 넣었다...
영웅 (1) 스무 살 때의 그를 실제로 본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앞으로 천 명이 넘는 사람을 구할 사람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를 처음 보았던 곳은 김나지움이었다. 첫 자기소개 시간 때 그는 앞으로 나가 당당히 자신의 사업 포부를 밝혔다. 한 눈에 봐도 야망있고 당찬 소년이었다. 기회주의적이고 전략적이며 돈을 원하는 그의 성격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약간은 내향적이고 책 읽기를 좋아하고 성공보다는 소소한 행복을 원했던 내게 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의 이기심이 좋았다. 스무 살 때의 그를 꽤 오랜만에 보았다. 그는 선창가와 술집을 제집들 듯이 드나들었으며 많은 여자를 거의 식사를 하듯이 먹어치웠다. (많은 독자들이 이러한 표현에 너무 기분 나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남을..
대답 (6) 그는 전지전능한 지성을 갖추었으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신의 탑- 그는 한국기원과의 대국 후에 중국기원 앞에서 전세계 기자들을 모아놓고 엘파고와의 재대국을 신청했다. 이미 구글의 팀이 그에게 무너진 상황에서, 그의 전지전능한 능력은 능력있는 프로그래머들의 도전심리를 자극했다. “3년을 기다리신다고 하셨는데 1년밖에 안 지났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중국인 기자가 물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대국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준비는 이미 다 되어 있습니다. 대국만 하면 됩니다,” 그는 가뿐히 대답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엘파고 팀의 대답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기자들에게 도착했다. “한 판 붙자.”라고 요약될 수 있는 그들의 대답은 기자들의 손을 바빠지게했다. 대국날짜는 그로부터..
대답 (5) 구글이 제안한 경기에서 압승한 그는 이번에 황당한 제의를 역으로 한국기원에게 해왔다. 바로 최정상 프로들과 접바둑을 두고싶다는 제안이었다. 그의 황당한 제의에 코웃음치던 한국기원은 당연히 그가 몇 점을 깔고 두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막상 그는 한국기원에 와서 최정상 프로들에게 검은 돌을 쥐고 몇 점을 깔라고 말했다. 그의 황당한 제의에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하던 프로들은 결국 국가대표 감독의 말에 따라 먼저 검은 돌을 4개씩 깔았다. 그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돌이 판마다 잘 깔려있는 것을 보자마자 흰색 돌을 들어 하나씩 두기 시작했다. 최정상 프로 8명과 4점 접바둑 동시대국이었다. 황당한 상황에 아무 말을 못하던 프로들은 깊은 모욕감을 느꼈으나 투철한 직업정신덕분인지 자신들도 모르게 바둑 판 위로 손을 뻗었..
대답 (4) 그는 전지전능한 지성을 갖추었으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신의 탑- [3년의 자숙기간 중 1년이 지난 후 그의 나이 26살] 그는 점차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토크쇼에서도 얼굴을 드러냈으며, UN이나 미국 의회 등에서도 토론이나 자문으로 점차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질문할 시간을 2시간 33분 주겠다고 말했다. 한 중국 기자가 손을 들어 영어로 질문하려는데 그는 한 쪽 손을 들어 그 기자에게 중국어로 질문해도 된다고 중국어로 말했다. 그의 언어능력에 놀라며 그 중국 기자는 중국어로 말했고 그는 아주 차분하게 중국어로 말하며 다른 기자들을 위해서 영어로 설명해주었다. 이..
대답 (3) (이것은 그가 3년의 자숙기간에 겪었던 일 중에 하나를 담은 글이다.) 그의 본업은 연구원이었고, 평소에 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연구에 온종일 몰두하는 성격이었다. 그가 자신의 연구에 집중할 때 그의 눈은 밤하늘의 어떤 별보다 밝았다. 그는 대체로 연구를 혼자서 했고, 간혹 같이 협력할만한 사람들을 불러 함께 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는 연구를 계속할만한 후원은 이미 다 받았고 그의 연구를 무시하거나 감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마 독자분들은 도대체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어마어마한 특권이 주어졌는지 의아할 것이다. 그는 만으로 17살이 되던 해에 자신이 3년 동안 골몰해왔던 골드바흐의 추측을 풀어냈다.(골드바흐의 추측은 실제로 있는 난제이며, 수백 년간 많은 천재들을 무릎꿇렸다. 특히, 오일러 같은 ..
대답 (2) 그는 전지전능한 지성을 갖추었으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신의 탑- 그가 체스에서 최강의 체스 엔진 둘을 상대로 연승을 이어나간 것은 맞지만, 솔직히 기자들은 그가 *릴파제로나 *엘파고를 바둑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체스에는 6개월이 걸렸는데 바둑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답과 동시에 바둑 기력이 상당한 기자들은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비웃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체스가 6개월인데, 바둑이 일주일이면 좀 심한 것 아닙니까?" "저는 6개월동안 체스의 수만을 분석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실 그 기간동안 바둑의 수를 더 많이 분석했습니다. 바둑과 체스는 비슷해보이지만 상당히 많이 다릅니다. 분명 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