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날개 48

영웅 (1)

스무 살 때의 그를 실제로 본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앞으로 천 명이 넘는 사람을 구할 사람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를 처음 보았던 곳은 김나지움이었다. 첫 자기소개 시간 때 그는 앞으로 나가 당당히 자신의 사업 포부를 밝혔다. 한 눈에 봐도 야망있고 당찬 소년이었다. 기회주의적이고 전략적이며 돈을 원하는 그의 성격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약간은 내향적이고 책 읽기를 좋아하고 성공보다는 소소한 행복을 원했던 내게 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의 이기심이 좋았다. 스무 살 때의 그를 꽤 오랜만에 보았다. 그는 선창가와 술집을 제집들 듯이 드나들었으며 많은 여자를 거의 식사를 하듯이 먹어치웠다. (많은 독자들이 이러한 표현에 너무 기분 나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남을..

상상의 날개 2021.04.07

대답 (6)

그는 전지전능한 지성을 갖추었으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신의 탑- 그는 한국기원과의 대국 후에 중국기원 앞에서 전세계 기자들을 모아놓고 엘파고와의 재대국을 신청했다. 이미 구글의 팀이 그에게 무너진 상황에서, 그의 전지전능한 능력은 능력있는 프로그래머들의 도전심리를 자극했다. “3년을 기다리신다고 하셨는데 1년밖에 안 지났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중국인 기자가 물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대국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준비는 이미 다 되어 있습니다. 대국만 하면 됩니다,” 그는 가뿐히 대답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엘파고 팀의 대답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기자들에게 도착했다. “한 판 붙자.”라고 요약될 수 있는 그들의 대답은 기자들의 손을 바빠지게했다. 대국날짜는 그로부터..

상상의 날개 2020.12.24

대답 (5)

구글이 제안한 경기에서 압승한 그는 이번에 황당한 제의를 역으로 한국기원에게 해왔다. 바로 최정상 프로들과 접바둑을 두고싶다는 제안이었다. 그의 황당한 제의에 코웃음치던 한국기원은 당연히 그가 몇 점을 깔고 두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막상 그는 한국기원에 와서 최정상 프로들에게 검은 돌을 쥐고 몇 점을 깔라고 말했다. 그의 황당한 제의에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하던 프로들은 결국 국가대표 감독의 말에 따라 먼저 검은 돌을 4개씩 깔았다. 그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돌이 판마다 잘 깔려있는 것을 보자마자 흰색 돌을 들어 하나씩 두기 시작했다. 최정상 프로 8명과 4점 접바둑 동시대국이었다. 황당한 상황에 아무 말을 못하던 프로들은 깊은 모욕감을 느꼈으나 투철한 직업정신덕분인지 자신들도 모르게 바둑 판 위로 손을 뻗었..

상상의 날개 2020.12.18

대답 (4)

그는 전지전능한 지성을 갖추었으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신의 탑- [3년의 자숙기간 중 1년이 지난 후 그의 나이 26살] 그는 점차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토크쇼에서도 얼굴을 드러냈으며, UN이나 미국 의회 등에서도 토론이나 자문으로 점차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질문할 시간을 2시간 33분 주겠다고 말했다. 한 중국 기자가 손을 들어 영어로 질문하려는데 그는 한 쪽 손을 들어 그 기자에게 중국어로 질문해도 된다고 중국어로 말했다. 그의 언어능력에 놀라며 그 중국 기자는 중국어로 말했고 그는 아주 차분하게 중국어로 말하며 다른 기자들을 위해서 영어로 설명해주었다. 이..

상상의 날개 2020.12.18

대답 (3)

(이것은 그가 3년의 자숙기간에 겪었던 일 중에 하나를 담은 글이다.) 그의 본업은 연구원이었고, 평소에 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연구에 온종일 몰두하는 성격이었다. 그가 자신의 연구에 집중할 때 그의 눈은 밤하늘의 어떤 별보다 밝았다. 그는 대체로 연구를 혼자서 했고, 간혹 같이 협력할만한 사람들을 불러 함께 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는 연구를 계속할만한 후원은 이미 다 받았고 그의 연구를 무시하거나 감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마 독자분들은 도대체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어마어마한 특권이 주어졌는지 의아할 것이다. 그는 만으로 17살이 되던 해에 자신이 3년 동안 골몰해왔던 골드바흐의 추측을 풀어냈다.(골드바흐의 추측은 실제로 있는 난제이며, 수백 년간 많은 천재들을 무릎꿇렸다. 특히, 오일러 같은 ..

상상의 날개 2020.12.18

대답 (2)

그는 전지전능한 지성을 갖추었으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신의 탑- 그가 체스에서 최강의 체스 엔진 둘을 상대로 연승을 이어나간 것은 맞지만, 솔직히 기자들은 그가 *릴파제로나 *엘파고를 바둑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체스에는 6개월이 걸렸는데 바둑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답과 동시에 바둑 기력이 상당한 기자들은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비웃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체스가 6개월인데, 바둑이 일주일이면 좀 심한 것 아닙니까?" "저는 6개월동안 체스의 수만을 분석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실 그 기간동안 바둑의 수를 더 많이 분석했습니다. 바둑과 체스는 비슷해보이지만 상당히 많이 다릅니다. 분명 한 명..

상상의 날개 2020.12.18

대답 (1)

그는 전지전능한 지성을 갖추었으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 신의 탑 - "컴퓨터는 어마어마한 연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용 청소기같은 하찮은 하드웨어말고 기상용으로 쓰이는 슈퍼컴퓨터나 이제 곧 나올 양자프로세스의 계산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죠. 이런 컴퓨터를 암산으로 따라잡겠다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인간의 두뇌만이 갖는 거대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연결입니다. 인간의 뉴런은 아주 간단한 착상에도 수백 개 이상이 연쇄되어 작동합니다. 인간의 뉴런은 아주 놀랍도록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때문에 마치 우주 같습니다. 인간은 바로 이런 전뇌적인 사고, 연결, 유추 적용에서 컴퓨터를 압도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인공지능은 유추해석을 하는 식으로 발전할 ..

상상의 날개 2020.12.18

알람 (단편입니다)

“여자를 죽였어요” 그는 말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경찰관인 나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리고 그는 진술을 시작했다. “이틀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친구랑 저녁을 먹고 나서 헤어졌는데 약간 공허함이 느껴지더라구요. 시간도 좀 남고 해서 클럽에 갔습니다. 클럽에서 한창 춤추고 즐기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몸매가 정말 예뻤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다가가 작업을 걸었고 그녀도 좋다고 싸인을 보내길래 같이 가볍게 술 좀 먹다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가깝기도 해서 바로 제 집으로 갔습니다. 술도 좀 더 먹고 키스도 하니 취기도 오르고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습니다. 저는 바로 옷을 벗었고 위에서 그녀를 애무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그녀가 단호하게 거절하더라구요. 아니, 도대체..

상상의 날개 2020.12.18

정상인 정신병원(2)

“당신이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의사는 내게 물었다. “글쎄요. 책을 제법 많이 읽어서.. 문학 쪽으론 볼테르하고 셰익스피어를 좋아했던 거 같네요. 감명깊게 읽었다고 할 수 도 있구요. 특히 캉디드 끝부분 문장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 합니다’ 이건 금으로 수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소에 수학책도 취미로 즐겨 읽었구요. 가장 많이 읽은 철학책은 플라톤 대화록이에요. 그런 책들은 읽으면서 논박하고 논리적으로 토론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책을 읽고 그런 내용에 관해 얘기할 때 정말 행복했었어요. 지금도 그렇구요.” ”역시 당신은 책을 정말 많이 읽었군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자신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같았던 느낌을 받은 적은 있나요?“ ”한때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상상의 날개 2020.12.13

정상인 정신병원(1)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나 역시 전혀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일로 이 곳에 와 갇혀있는 것인지 나 또한 알지 못한다. 기억난다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이곳에 갇혀있다. “당신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까?” 의사가 물었다. “아니요 기억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명확히 모든 게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다만, 그 기억이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럽기에 그 기억에 담긴 함의가 무엇인지 너무나 정확히 알기에 그 기억으로부터 저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합니다.” 나는 대답했다. 나는 지금 여기 정신병원에 와 있다.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곳에 와있다. 하루하루 끔찍스러운 고통의 나날들 그 고통의 반복들... 처음에 나는 의사에게 설명해보려고 했다.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상상의 날개 202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