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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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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이야기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4) 그렇게 모부도, 생선도, 친구도 하나 없이 화형식에서 당해서 끝났던 나는 좋은 책들을 읽으며 스스로 부활하였다.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책들을 읽으며 내 인생을 바로 세웠고 미래를 온전히 그렸으며 수학문제를 풀며 하루를 즐기며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모부의 대트롤에 어떻게 대답하였을까? 나는 이 모부에 대트롤에 상종가로 대답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바로 이더리움을 사면 된다는 간단한 해법으로 그 이후 모부에게 많은 이득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기에 무려 6개월간 직접 컨설팅 해주며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흐름을 리딩해주었다. 그리고 이 시기 동안 암호화폐는 무려 4배가 넘는 성장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 리딩과 컨설팅을 받고도 제대로 된 수익을 얻지 못했다거나 혹은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 말하..
영웅 이야기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3) 그래, 솔직히 그건 고생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정도의 고생을 겪고 생존만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영국 최상위 대학에서 연구할 정도로 수학 실력을 키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나 그 정도으 고생 더 정확히 말하면 고문을 겪고 생존했는데 영국 최상위 대학에서 연구할 정도로 수학 실력을 키우는 것은 역시 '영웅'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에와서는, 나는 감사해야하는지 힘들어야해 하는지 잘 모르는 어려움에 처해있다 ㅋㅋ 왜냐하면, 하늘에게 '나를 고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만큼 변태적인 대답이 어디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선택은 감사와 용서이다. 물론, 사람이기에 하루 수십 번도 마음이 바뀔 수 있는 것은 인정한다. 나라는 사람은 결심이나 결의 따위 같은 하찮은 것으로 움직이는 사..
영웅 이야기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 `나는 수학에 타고났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에서야 수학을 제대로 시작했고 그 때 수학에 맛들려서 수학을 사랑할만큼 수학에 심취했었다.(여기서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고등학교 때에는 문과였다가 재수 때 이과로 바꾼 케이스이다. 정말 특이한 케이스라는 걸 나도 알지만 원래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수학을 좋아해서 이과를 정말 가고 싶어 했었다. 개인적인 사유때문에 고등학교 때에는 이과를 택하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는 나는 오히려 그게 더 잘 된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수학을 곧잘 했지만 내 친구 중에서 국어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걔랑 나랑 성적이 정말 앞치락뒷치락 했기 때문에, 우리는 약간 경쟁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 걔는 국어를 잘하고 내가 수학을 잘 했으니 서로 도와주면서 ..
영웅 이야기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지난 3월 초였나 여자친구에게 힘들었던 내 과거까지 보여주며 울었던 내 부끄러운 모습을 떠올리며 이렇게 글을 적어야하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나는 내 여자친구에게 좋은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거의 비밀이 없는 단계이기도 하지만... 먼저 이 글을 쓰기 앞서 나 역시도 한국의 많은 모부(부모를 부르는 나만의 애칭이다)들에게 인생에 어떤 부분들을 희생당한 그냥 일반적인 한국에 살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라는 점을 먼저 말하고 싶다. 이미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15년도 전에 말했듯이, 한국은 현재 빠른 속도로 붕괴하고 있다. 이미 한고쿠의 붕괴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특히 이번(2024) 의료대란이 그걸 중점적으로..
기억의 조각 나는 달렸다. 달리는 거 외에는 어떠한 선택지도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해가 적막하게 저물어 갈 때도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갈비뼈 사이를 어루만질 때도 나는 그저 조용히 달렸다. 달리는 것은 내게 반항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반항이었다. 나의 말이 금지당한 곳에서 포효하는 나만의 반항어語였다. 황금 같은 20대의 어느 날, 나는 한국 남자라면 당연히 간다는 군대에 갔다. 훈련소는 일과를 체조와 달리기로 시작한다. 약 3km 정도 되는 거리를 달린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는 자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군수체조를 했다. 병장 때 되면 눈 감고 반수면 상태로 하는 그 체조가 끝나면, 군화를 신고 연병장을 달렸다. 언제가 되어야 끝이 날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되었다. 달리..
전역 그 이후 이제 마지막으로 전역 그 이후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어느새 전역한 지 몇 개월이 흘렀다. (몇 개월이 지나긴 했어도 사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다 ㅎㅎ) 아마 이 글로 이 블로그에 올리는 군대 스토리는 마무리 되지 않을까 싶다 ㅎㅎㅎ 전역하고 난 뒤 나는 지금 하루하루 일상에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정말로, 부대에 있을 때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상의 행복들을 나는 마음껏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진심으로 나는 이 시절이 감사하다. 이렇게까지 여유로워도 되나 싶을만큼 여유를 부릴 때도 있었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을 때 편하게 자고 나는 정말 행복했다. 감사합니다 '행운도 좋고 불운도 좋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히로나카 헤이스케 씨가 쓴 이라는 책에 보면 ..
집에 좀 가자 : 병장 그리고 전역 이제 기억에 의지해서 병장 때 얘기를 써보려고 한다. 병장 때 솔직히 워낙 짧아서 큰 의미가 있나 싶긴 하다. 요새는 병장이 좀 더 길어졌다고 하던데(사실 신경 안 써서 정확히 모름) 예전에는 병장 기간이 더 짧았다. 병장 때 워낙 짧았어서 가지고 있는 기록도 별로 없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기록을 봐도 군생활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고 그 당시에 몰두했던 거에 관한 기록들이 많다. 나는 전역이 한달 남았을 때에도 소초에 있었다. 그래도 지금도 감사한 건 소초에 들어가서는 훨씬 더 운동, 독서, 영어 등등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는 것이다.(일단 5대기를 안 차니 ㅎㅎ) 지금 생각해도 기특하면서 신기한 게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하면서 지치지도 않았고 훨씬 힘이 많이 났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마 똑같을텐데..
4개의 화기를 모두 이긴 사람 : 상병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시편 40편 11절) '가장 고귀한 즐거움은 이해의 기쁨이다'(레오나르도 다빈치) '인내와 노력이 없었던 지적인 천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아이작 뉴턴) 일병 때 내가 부대(중대)를 옮겨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서 적었다. 중대를 옮겨야 했을 때 일병이었기때문에 (당연히 그 전에는 휴가를 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적응기에 소초임무 등등이 겹쳐서 내 휴가는 미뤄질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나는 내가 군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올타임record를 세웠다. 아마도,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훨씬 심각하리라 생각한다. 내 기록도 아마 모르긴 몰라도 깨졌을 것이다. 물론, 그건 지금 군생활을 하고 있는 병사들에겐 곧 지옥이라는 ..